시민독립언론 ‘서귀포사람들’은 신생 창업회사입니다. 이런 걸 스타트업(Startup)이라고 하는데, 소수의 창업가가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종잣돈을 기반으로 시장에 도전할 때 부르는 말입니다. 서귀포시에는 독창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무기로 척박하고 냉정한 시장에 도전장을 내
일본인 마수다이치지(桝田一二)가 쓴 『제주도의 지리학적 연구』에 신례리 화전과 관련한 내용이 보인다. 그는 ‘남원 수악동은 신례리를 모촌(母村)으로 하여 김 씨 및 정 씨 등에 의해, 묵지동은 한남리 이 씨, 고 씨 일족에 의하여 각각 새로운 취락의 발전생성을 보게 되
군에 간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원래 야구선수라 고기를 자주 먹는데, 특별히 흑돼지 구이가 당긴다고 했다. 흑돼지 구이가 다른 고기 음식보다 비싼데, 4명이라 가격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날을 대비해 보아둔 음식점 몇 군데가 있다. 일요일이라 한 군데는 문을 닫
정방동은 서귀포시 구도심에 위치한 마을이다. 정방동이란 이름은 주변 정방폭포에서 유래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이중섭 화백이 살았던 이중섭 거주지와 그를 기념하는 미술관, 이중섭 거리가 정방동에 있다. 또한 한국 서예계의 거목 소암 현중화 선생이 생전 작품 활동을 했던 곳
1984년 제주도에겐 매우 중요한 해였습니다. 그해 5월 25일 제13회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제주공설운동장에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주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전국적인 체육행사였습니다. 당시 필자는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소년체육대회 성화를 들고 달리기도
장마가 길어져 지루하던 차에, 집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우아하게 보라색 옷을 차려입었는데, 꽃가루를 품은 수술대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한꺼번에 떼로 몰려온 게 아니라서 더욱 정이 간다. 이제 가지가 열매를 맺을 시간이다.가지는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가 원산지인
앞선 기사에서 한림읍 명월리에서 위미리 감낭굴화전으로 이주한 양 씨 집안에 대해 언급했다. 명월리 출신 양정이 신도리로 이주한 후 그의 아들 양기길이 두 아들 지현, 명현을 데리고 감낭굴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훗날 양지현은 신도리로 돌아갔고, 양명현은 위미리에 정
빈집에 소가 들어온 것처럼, 마을에 굴삭기가 그냥 들어왔다. 남원읍 하례2리(이장 강승필)에 소재한 감귤연구센터(센터장 안현주)에서 10년 넘게 사용한 굴삭기를 마을에 무상으로 기증했는데, 주민들은 굴삭기 작업에 비싼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기대했다.4일 오
장맛비 잠시 물러가어스름 내리는 새연교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옛날 연륙교에 부딪쳐마침내 울음 엎질러 놓았다.오래전,어머니 소녀 시절애기허벅 내리다엎질렀을 그 울음PHOTO BY 양희라
월평어촌계(계장 윤재근)가 어업권을 되찾기 위해 서귀포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가운데, 서귀포시가 강정동어촌계에게 어업면허 10년 연장한 사실이 확인됐다. 어업면허 10년 연장은 법이 정한 대로 재량권 없이 행사하는 행정행위라고 서귀포시는 밝혔다. 이에 월평어촌
딸이 며칠 휴가를 내고 집에 왔다. 공항에 마중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비가 내리고 어둠이 깔렸다. 오는 딸이나 마중하는 부모나 모두 밥 때를 놓쳐 허기가 몰려온다. 비가 내려 몸과 마음이 축축해지는 날, 얼큰한 국물에 따뜻한 밥 한 술 뜨면 힘이 날 것이다.남원읍사무소
체험농장을 준비하는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농장에는 여러 품종의 꽃이 자라는데, 셀 수 없이 많은 나비가 그 안에 터를 잡고 있다. 겉으로는 한가로워 보이는 나비. 사실은 꿀을 채취하거나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 등 저마다 분주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드러
앞선 기사에서 감낭굴화전은 위미리의 유일한 화전이었다고 기술했다. 당시 감낭굴에는 천주교인이 2명 예비교인이 16명일 정도로 꽤 큰 화전촌이었다. 감낭굴화전에 누가 최초로 들어와 살았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노리못. 감낭굴화전 주민들이 생활용수를 구했던 연못이
1. 송당계보의 이유를 찾아 한동으로 한동으로 접어들었다. 덕평로에서 한동로로 이어지는 길도 장맛비로 젖었다. 하지 무렵의 비는 농사에 좋다지만 한꺼번에 쏟아지지 말길 바랐다. 구좌읍 한동리 본향당 신의 이름은 ‘궤본산국’. 송당의 일곱째 아들이다. 김오생 심방은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