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의 시대, 공포에 시달려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건 인간

[북 리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소설은 눈 내리는 벌판에 서 있는 경하의 꿈으로 시작된다.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여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은”(p.9)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벌판과 이어진 산의 등성이에 서 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p.9) 어느 순간 물이 차오르고 나무 아래 무덤들이 잠긴다. “지평선인줄 알았던 벌판의 끝은 바다였다.”(p.10) 바다에 무덤이 다 잠기기 전에 묻힌 뼈를 옮기려 뛰다가 경하는 잠에서 깬다.


낯선 벌판에 눈이 내리고 검은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밀려오는 꿈은 반복된다. 검은 먹을 정성스럽게 입힌 통나무들을 적당한 곳에 심고, 흰 눈이 떨어지는 과정을 짧은 기록영화로 만들자는 경하의 제안에, 사진과 다큐 영화 작업을 했던 친구 인선이 흔쾌히 동의한다. 다큐 작업을 그만두고 고향 제주로 내려가서 연로하신 어머니를 돌보던 인선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목공 일로 작은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새’ 에서 인선과 소원해진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과 작별들을 겪은 경하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사람들과 단절된 채 수신인 이름이 없는 유서를 썼다 찢는다. “진짜 작별인사를, 제대로”(p.25)라 자신에게 말하면서 “모두에게 보내는 작별 편지를”(p.29) 새벽 마다 책상 앞에 앉아 쓴다.


자신 안에 침잠해 있던 경하에게 어느 날, 몇 년 소식이 뜸하던 인선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온다. 목공 작업 중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부상을 당해 봉합 수술 후 서울의 병원에 입원중이니 와 달라고.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p.57)


인선은 제주 집에 있는 새를 돌보아달라고 부탁한다. 당장 떠나지 않으면 새는 죽는다고.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타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길을 헤매며 경하가 중산간에 위치한 인선의 집에 도달했지만, 가냘픈 작은 새 아마는 이미 죽었다. 눈을 헤치고 경하는 인선의 작은 새를 마당 나무 밑에 묻는다.


▲ 제주4.3 희생자 위령제에서 비극을 재현하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사진=장태욱)

2부 ‘밤’의 시작도 다시 눈 내리는 벌판의 검은 나무들에 바다가 밀려오는 경하의 꿈이다. 일어나 보니 어제 이미 죽은 새 아마가 횃대에서 모이를 쫀다. 정전이 되어 버린 인선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경하가 불을 피우러 인선의 공방에 들어가자 인선이 공방에 있다. 손가락이 잘려 서울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입원 중인 인선이 이미 제주로 돌아왔을 리 없다. 2부 ‘밤’은 경하와 인선의 혼이 나누는 대화로 구성된다.

인선과 경하 외에 『작별하지 않는다』의 세 번째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다. 경하가 인선의 제주도 집으로 놀러갔을 때 두 손을 잡아주며 ‘의심과 신중함, 무미한 따스함’(p.272)이 섞인 눈길로 ‘놀다가세요’라 서울말로 말하던 몸집이 작은 인선의 어머니는 녹슨 실톱을 이불 밑에 깔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만큼 고통 받으며 살아왔다. 부모 형제를 잃고 살아남은 인선의 아버지와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겪은 4.3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다.


인선의 아버지는 동굴에 숨어 있다 살아남았지만, 4.3.에 온 가족의 몰살을 목격하고 대구형무소에서 십오 년 형을 살고 나와 폐인처럼 살다 돌아가셨다. 언니와 심부름을 간 사이 가족이 몰살되어 목숨을 건진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사체를 찾지 못한 가족의 자취를 평생 쫒는다. 대구형무소로 이송되었다가 연락이 끊긴 오빠가 보도연맹 때 학살되어 경산 코발트 광산에 암매장 되었다 추정되자, 수십 년 동안 오빠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인선에 의해 담담히 이야기된다. 경하는 인선의 부모님 이야기를 통하여 4.3을 알아간다.


“젖먹이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p.220)


경하가 포기하려 한 기록영화 프로젝트를 인선은 혼자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인선의 제주 집에는 잘 말려서 검은 페인트칠을 하고 보관되어 있는 나무들이 수백 그루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관통한 4.3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인선은 낮에는 목공일을 하고 밤에는 자료를 모으면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록영화 프로젝트의 제목이 무엇이냐는 인선의 물음에 경하는 함께 준비하려 했던 영화 프로젝트의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1,2 부에 비해 짧은 분량의 3부는 ‘불꽃’이다. 인선은 ‘작별하지 않는다’ 프로젝트의 나무를 심을 곳으로 눈길을 헤치며 경하를 이끈다. 4.3으로 불태워져 더 이상 인가의 자취가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가 남긴 땅, 십오 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뜨면 “나무들이 있던 자리마다 콩알같이 작은 불꽃들이 떠 있었다는”(p.321) 것을 본 그 곳으로. 힘들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작별하지 않고, 기억하고, 실행하는 것. 아버지의 땅에서 경하와 인선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할 것이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은 자신의 소설에 입문하는 독자들에게 가장 최근의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로 시작하기를 권한다. 2021년 출간된 이 소설은 실제 작가가 제주도에 머무르며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4.3에 대한 자료들이 다양하게 인용되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광주 5.18을 모티브로 한 한강의 이전 소설 『소년이 온다』와 맞닿아 있다. 읽으며 고통스럽기에 한강의 작품은 읽기 힘들다. 힘들지만 다시 또 한강의 소설을 읽는다.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며, 정제된 언어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한강의 작품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유효숙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몇 년 전 은퇴했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집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노랑 고양이 달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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