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연 맑은 물, 벼랑 깎고 오름 세웠다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23) 베릿내오름
사라져 가는 제주의 모습들
제주도는 동서 사면보다 남북 사면이 훨씬 가파르다. 이런 지형적 특성으로 남북 사면은 깊은 골짜기와 독특한 계곡을 만들어 낸다. 특히 서귀포시는 계곡에서 흘러내려 만들어 낸 수직 폭포들이 많다. 이 폭포들은 지형적으로나 경관적으로나 독특하고 종 다양성 측면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이런 특성으로 한라산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할 때 결정적 역할을 한 소중한 자원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늘 봐 왔던 모습이라 소중하다는 느낌보다 당연히 이곳에 남아있게 될 것이라는 안일함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방관자로 남게 하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현재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제주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어 제주를 찾았던 탐방객들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아쉬운 소리를 낸다.
베릿내오름의 ‘베리’는 벼랑
아늑한 한라산 깊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바위와 거친 길을 피하며 갈 길을 찾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흐른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흘러온 물은 마침내 폭포수를 이루고 장엄한 장관, 독특한 주상절리와 기암절벽을 만들어 낸다. 더불어 제주만이 볼 수 있는 ‘담팔수’를 비롯한 난대식물들에 반해 모여든 구경꾼들의 입소문으로 이곳은 명소가 되었다. 제주도가 고시한 공식 하천 지명은 중문천으로 통용되지만, 지역 사람들은 ‘성천’ ‘베릿내’ ‘천제천’으로 부르고 있다.

명소가 된 ‘천제연’, 그 폭포를 만들어 낸 ‘베릿내’ 계곡 따라 내려가다 보면 동쪽으로 보이는 오름이 베릿내오름이다. 계곡을 끼고 있는 가파른 바위 절벽, 벼랑을 뜻한다는 ‘베리’와 가파른 절벽을 끼고 도는 물이 있는 곳이라 베릿내오름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특별한 지형을 지명으로 남겼던 것이다. 세 봉우리를 지칭하여 동오름, 섯오름, 만지섬오름이라고 한다고도 한다. 테크 시설로 된 탐방로를 걷다 보면 봉우리인지 그저 평지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다 보면 느낌으로 가늠할 뿐이다. 이곳은 숲이 우거져 주변 경관을 볼 수 없는 곳도 있지만 살짝 바깥이 보이는 볕 바른 곳은 딱히 쉼터라고 지정해 놓지 않아도 지역 어르신들에게는 그냥 앉으면 쉼터가 된다.
색달천과 중문천, 그리고 솟아나는 용천수를 품은 오름
바다 방향에서 바라본 오름의 높이를 가늠할 만한 나무계단이 시작이다, 그 주변으로 토종 동백나무가 촘촘히 심겨 있다. 푸른 잎 사이로 붉은 꽃송이가 유난히 두드러지게 보인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면 냇가를 따라 베릿내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오르는 계단이 조금은 버거울 수도 있겠지만 정상에 올랐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듦은 사라져 버린다. 북쪽으로 한라산이 떡하니 눈앞에 펼쳐지고 바닷가로는 베릿내를 주변으로 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경치를 즐기며 가길 원한다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어야 할지도 모른다.

베릿내오름은 중문천과 색달천을 흐르는 물이 합류하여 천제연을 만들고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까지흐르는 물을 품었다. 오름 지명으로 불릴 만큼 물과 오름의 가파른 절벽이 만들어 낸 모습은 그 지역 사람들에겐 의미가 크다. 천제연은 벼랑 위에서 물이 떨어져 내리면서 폭포를 만든다. 3단 폭포(웃소, 알소, 고래소)로 이루어진 천제연, 제1폭포(웃소), 가뭄이 있을 때는 이 폭포는 떨어지는 물줄기가 가늘어진다. 이 폭포는 상류에서 흘러오는 물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곳은 폭포 아래 호수 깊은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용천호수다. ‘웃소 먹는물’ 중문 일대 사람들은 허벅으로 물을 져다 먹었던 중요한 식수원이었다고 한다. 그 옆에는 기우제를 지냈던 터가 남아있는 만큼 소중한 장소였다.

강수량은 느는데 용천수는 줄어들어
다행히 2폭포(알소), 3폭포(고래소)는 여기서 용천하는 물 덕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시원하게 흐르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볼 수 있다. 물이 귀하다고 여기던 시절, 이곳에는 백중, 처서에 물맞이 하는 사람들로 붐비었고 목욕이나 빨래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아늑히 멀어져 버린 옛이야기이다.

제주의 강수량은 많은 데 용천하는 물의 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아니 사라지고 있다. 1978년부터 조성된 중문관광단지와 그 주변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한때 신혼부부에게 각광을 받았던 곳, 한복을 입은 새색시들의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던 시절도 이제 아득한 과거로 묻혔다. 다행히 파란 하늘과 물빛이 만난 호수는 감탄할 만한 빛깔을 만들어 유혹 하는 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베릿내오름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181
표고101.2미터 자체높이 61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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