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독재(耕讀齋 소농 선생 서재)와 관련해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거기서 인생 처음으로 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80년대 어느 날 소농 선생으로부터 경독재에 잠깐 다녀가라는 전갈이 왔다. 소암 선생(素菴 玄中和 선생)이 오셨으니 뵙게 인사를 올리라는 말씀이셨다. 소암 선
여덟물 간조기라 해수욕장 모래밭이 드넓게 바닥을 드러내고, 비양도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다. 모래사장을 서쪽에 검은 현무암 대지가 드러나는데, 거기에 두터운 돌담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우주인이 바다에 남기고 간 조각품으로 오해를 살만 한데, 공동체가 오래도록 쌓고 지
일제강점기와 해방, 근대화의 모든 과정은 민초들에게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이 기간을 거치는 동안 역사의 폭력을 단 한 차례로 피하지 못한 가족이 있다. 가족사의 모든 걸 지켜본 홍태생 삼춘이 그동안 가족이 격은 일을 전했다.홍태생 삼춘은 1942년, 서귀포시 남원
조선시대 중문리 북쪽에 상문리라는 화전마을이 있었다. 1914년 상문리 화전 지역에는 47호가 살았고 이들은 밭 149필지, 임(林) 여섯 필지를 소유했다. 그 중 여덟 가구가 윤못화전에 살았다. 윤못화전은 거린사슴오름 기슭에 있었던 연못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윤못화
소농 오문복 선생의 인연 가운데 성산포 주관으로 시화전시를 열었던 일은 평생의 보람으로 생각한다. 회원들끼리 사석에서 의견이 오갔는데 전시가 성사됐고, 관람객들이 많이 찾았다.■ 소농 오문복 시서화전(素農 吳文福 詩書畵展) 성산포문학회가 창립하여 1년쯤 되던 2009
절기가 오락가락 한다. 무더위 끝에 잠시 가을장마가 섬에 머물더니, 또 무더위가 찾아왔다. 더운 날, 시원한 물가에서 더위를 날리는 건 모든 이들의 즐거움이다.▲ 15일 서귀포시 송산동 자구리물에 사람들이 몰렸다.(사진=장태욱)15일 오후, 서귀포시 송산동 자구리공원에
인연(因緣)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의 인연이라 함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를 인연이라 한다. 소농 오문복 선생님과 나의 인연은 어떻게 이루어져 오늘일까.특히 비학비천(非學卑賤)한 내가 소농 선생님과의 인연은 칠
국가기록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14년 상문리 화전 지역에는 47호가 살았고 이들은 밭 149필지, 임(林) 여섯 필지를 소유했음을 확인했다. 그 중 여섯 가구가 민모르화전에 살았다.■ 민모르화전 민모르화전은 중문동 1∼17번지에 있던 화전이다. 민모르오름 남쪽에
예전 제주도사라들은 대나무를 쪼개서 구덕을 만들어 썼다. 용도에서는 육지의 바구니와 비슷한데, 제주도 구덕은 바닥이 직사각형과 비슷한 모양이다. 차롱은 만드는 방법에선 구덕과 비슷한데, 용도가 조금 다르다. 구덕은 물건을 운반하는데 사용됐고 차롱은 음식을 보관하는 데
1911년 제작된 『조선지지자료』 전라남도 대정군 좌면 에는 ‘녹하지산(鹿下地山)’이 상문리(上文里)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에는 鹿下地野(녹하지들 또는, 녹하지벵듸)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入所火田野(입소화전야)가 상문리에 있다는 내용이 있다. 入所火田野(입소화전야)는
중문동은 중문관광단지와 해수욕장, 천제연폭포 등이 있어서 제주도 관광을 주도하는 지역이다. 관광단지 안에 수많은 볼거리와 편의시설이 있어서 여행객들, 특히 신혼부부들이 이곳을 방문해 추억을 쌓는다.지금의 중문동에는 과거 상문리, 중문리, 하문리라 불리는 세 개의 마을이
너른도화전에 속했던 하원동 1848번지는 일제강점기에 박재후가 살던 집이다. 그런데 변재덕이란 사람이 색달동에 살았는데, 너른도로 이주해 살면서 박재후의 밭을 사들였다. 이후 이 땅은 변 씨 집안 소유가 됐다. 제주4·3 때 화전민 변덕하는 해안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산
하원동 상잣 위에 너른도화전이 있었다. 과거 주민들은 지금의 마을을 하원, 영실 일대를 상원, 너른도 일대를 중원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호적중초에는 너른도에 화전민 50명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1914년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하면서 남긴 기록에는 하원동 주민 1
과거 서귀포시 하원동 상잣 위에 너른도화전이 있었다. 법정사항일운동 발상지로 가는 길가 하천변에 있었는데, 하원동 1848번지 일원을 이른다. 주민들은 영실 주변을 상원, 이 지역을 중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원동은 중산간 마을로 법화사와 관련이 많은 마을이다. 하원동
도시 뒷골목에 뛰어노는 사진 속 아이들은 한없이 행복하다. 부모님이 일터에 나간 사이 이들은 함께 놀고 밥도 같이 먹는다. 이 시대 친구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제주도 바당과 밭에서 어른들이 일하는 풍경은 그 시대 수눌음을 담았다. 거친 환경에서 함께 생활하는 섬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