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 마음의 소질을 묻는다

도민대학 ‘『순수이성비판』읽기 Ⅱ’ 19일 저녁, 서귀포시민문화체육복합센터에서 개강

시인 최영미가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비평사)에 던진 한 구절 ‘아아 컴-퓨-터와 x할 수만 있다면!’은 당시로서 엄청난 도발이었다. 그는 〈personal computer〉라는 시에서 컴퓨터가 유감스런 과거를 깨끗이 지워주고, 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박거려 친구나 애인보다 낫다며 이 같은 시어를 던졌다. 개인용 컴퓨터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기에, 당시 새로운 기계가 불러온 삶의 변화는 시의 마지막 한 구절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그 이후에도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제 최고 최강의 기사를 쉽게 제압할 정도로 기계는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을 능가하고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인공지능이 논문과 기획안을 대신 작성해주고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게 더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됐다.

그런 가운데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하고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과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그 같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인간이 과연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존재인지, 인공지능의 지배하에 놓이지는 않을 것인지 등을 공부하는 장이 서귀포에 마련됐다.


▲ 시민 30명이 자리를 채우고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사진=장태욱)

‘제주에서 『순수이성비판 읽기』Ⅱ’ 강좌가 19일 오후 7시, 서귀포시민문화체육복합센터에서 개강했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원장 진희종)과 제주도민대학이 칸트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강좌다. 지난해 강좌에 이어 올해도 김상봉 전 전남대 교수가 강의를 맡는다. 4월 16일까지 수요일마다 총 5강좌가 이어진다.


김상봉 교수는 강의 구성 전반을 설명하면서 “지금은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고유성을 찾을 때”라며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인간은 생각이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하고, 그런 질문을 통해 변화된 환경에서 인간은 자신의 고유성과 본래성을 잃지 말고 기계와 함께 진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19일 열린 첫 강좌의 주제는 ‘생각의 법칙과 존재의 질서는 어떻게 일치하는가?’였다.

김상봉 교수는 “서양인의 인식에 따르면 우주 안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플라톤은 그게 존재 안에 있다고 봤고 칸트는 순수이성에 사물에 패턴이 있다고 인식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자연이 우주에 이성적으로 배열됐기 때문이다.”라며 “이렇게 이성과 세계가 서로 조응하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세계를 수학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사유의 패턴을 갖게 세상에 태어났다는 칸트의 확고한 신념은 양자역학의 출현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대표적으로 하이젤베르크가 1927년에 제기한 ‘불확실성의 원리’를 들 수 있다. ‘불확실성의 원리’는 원자 내에서 전자가 이동할 때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이론으로, 모든 사물의 현상은 일정한 질서 아래 존재하고 원인과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칸트의 신념을 위태롭게 했다는 것.

그리고 최근 인간의 이성은 100년 전 양자역학이 던진 것과는 다른 종류의 충격을 받고 있다. 서두에 기술한 인공지능의 등장이 불러온 파장이다.


▲ 김상봉 교수(사진=장태욱)

이와 관련해 김상봉 교수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세 종류의 책을 소개했다. 김선희(철학자)의 『인공지능의 마음을 묻다』(한겨레출판사, 2021), 정대현(철학자)의 『로봇종 인간과 자연종 인간』(커뮤니케이션북스, 2025), 강국진(물리학자)의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필로소픽, 2023) 등이다.

김선희의 책은 ‘인공지능은 생각할 수 있는가?’를 포함해 7가지 질문으로 구성된 책이다. ‘인공지능과 사랑할 수 있을까?’라며 최영미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질문도 있다. 저자는 ‘생각’과 ‘마음’이 무엇인지 묻고 대답하며 철학에서 답을 얻고자 한다.

김선희의 물음에 대해 김상봉 교수는 함석헌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기계는 보이지 않는 정신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즉, 현미경은 외화된 눈이고 인공지능은 외화된 정신이라, 인간의 마음이 인공지능을 통해 외화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정대현의 책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구분하려고 ‘로봇종 인간’이라는 단어를 도입했다. 저자는 로봇종 인간과 자연종 인간을 구분하면서, 그 기준을 놀이에서 찾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로봇이 노동을 맡고, 인간은 창조와 놀이에 집중하는 사회를 전망했다.

강국진의 책은 인공지능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인공지능이란 기록된 문자를 인식하는 기술이며, 최초의 인공지능은 책이라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은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각은 늘 데이터의 박스 안에 갇혀 있게 마련이다. 인공지능은 박스 안에서 생각하는 반면, 정의나 윤리가 데이터 안에 존재할 수 없다. 박스의 경계를 어디에 놓아야 할 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김상봉 교수는 이런 책의 내용을 소개한 뒤 “기계와 인간의 같고 다름의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길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앎과 인식, 의지와 도덕성, 미적 체험과 종교적 믿음은 모두 마음의 일인데,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실천이상비판』,『판단력비판』등 세 비판서를 통해 마음의 소질과 능력을 분석했다.”라며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선명하게 나누어 볼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김상봉 교수는 생각과 인식이 무엇인지, 칸트의 생각을 통해 본질을 묻는 것이 이번 강좌의 물음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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