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지나고도닷새인데봄 대신 찾아온시베리아 동장군쏟아부은 눈가루놀라 귀신도숨을 죽인 이승이 겨울숲눈을 파고드는발자국 소리헐떡거리는숨소리걸을수록눈은 깊어지는데여기까지 왜 왔는지는아무도 묻지 않았다.PHOTO BY 양희라
입춘이 코앞인데큰아버지처럼 불쑥들녘에 하얀 손님이찾아왔다는 소식들뜬 마음에찾아간 물영아리눈이 시리도록 하얀 설원(雪原)온몸을 간질이는 차가운 공기앞선 발자국 따라걷는 길 위에도란도란이야기도 새겼다.PHOTO BY 양희라
소용돌이치는 세상독한 회의와 번뇌에 겨워비자나무 향기를 좇아멀리 찾아간 돝오름등반길 안에선키 큰 삼나무도키 작은 소나무도제 향기를 자랑한다.높은 곳에 닿으면구름 낀 하늘 아래길거리 응원봉 같은올록볼록 오름 세상“네 몫을 하면 되.”천년 비자림을 지켜온작은 수문장돝오름의
대한(大寒) 앞둔 한라산에서리 잔뜩 내려앉은 새벽눈부신 태양 솟는 곳으로차는 달렸다.퇴임하는 동료와낭끼오름 오르는 길억새 사이로 나무 아래로한걸음 한 계단사방이 트인 오름 꼭대기시간이 잠시 멈춘 듯천지가 고요하고풍력발전기마저 숨을 죽였다.“이렇게 멀리 왔나?”지나온 발
오름의 종가 구좌읍에달걀 같은 봉우리 몇 개서로 몸을 지탱하는동검은이오름이 있다새벽 어스름에 떠난 길인데싸늘한 바람과 마른 풀 내음나를 치유할 모든 것이길 앞에 펼쳐졌다.파란하늘 맞닿은 능선올록볼록 사방이 봉우리주몽을 깨울 듯이찬란한 햇살 쏟아진다.PHOTO BY 양희
중산간의 속살신례리 언덕배기에겨울바람에 실려붉은 꽃이 왔다시인 최영미가‘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라던 그 꽃어지러운 세상‘큰 새’의 추락을 들었나?눈물보다 먼저붉은 꽃송이가 떨어졌다PHOTO BY 양희라
주말, 추억의 숲길설레는 마음을 아는지내 앞길에하얀 카펫이 깔렸다.바깥의 들끓는 함성미처 여기에 닿지 못하고흰옷 소녀를 맞으려바람도 숨을 죽였다.시인 백석이하얀 당나귀 타고나타날 것 같은겨울 숲PHOTO BY 양희라
이른 아침 고살리숲,싸늘한 공기 앞세워코를 파고드는피톤치드 짙은 향오랜 세월숲을 흔드는맑은 시냇물의 노래여기 좁을 길을 냈다.비로소 속괴,시간이 멈춘태초의 연못 앞에서모두 침묵했다.PHOTO BY 양희라
연말 이라,흐르는 청춘 붙들려는조급한 마음으로바람을 거슬러 찾은 군산부지런한 바람은산에 조각을 새기고부지런한 발길은오솔길을 냈다.정상에서 맞는겨울 바닷바람겨드랑에서새싹이 돋는다PHOTO BY 양희라
메마른 억새흔들리며 우는 날이면누구에게나비밀의 정원이 있다.제국의 목마른 칸(Khan)이 감춰진 땅에제 욕망을 담을큰 못을 팠다.음산한 새벽바람과누적된 시간의 잔해와검회식 구름 낀 하늘로한못이 넘친다.PHOTO BY 양희라
모슬포 자리젓 냄새겨우 닿는 거리에사철 절(파도)이 운다는절울이오름장차 올 비극예감이라도 했나?제 번뇌 감당 못해폭발해버린 바다지우지 못한 상처치료하려는지청명한 하늘은 바람 일으키고부지런한 바람은 절을 부른다.PHOTO BY 양희라
은빛 억새 출렁이는아끈다랑쉬 가는 날일렁이는 마음에간밤엔 잠을 설쳤다.겨우 맞은 가을인데나를 반긴 건은빛 햇살 말고술에 취한 바람흥분한 바람 대신억새가 춤을 추고놀란 철새는하늘로 날아올랐다.PHOTO BY 양희라
가는 시월이못내 서러워장작 같은 빗줄기토해내던 하늘인데 단풍에 애가 닳던 마음과 통했을까?겨우 주말에 울음 그쳤다. 새벽, 천아숲길 적막 흔드는 물소리 좇아 노로오름 가는 길 설문대할망 요강단지 바위 웅덩이엔 가으내 노루 마실 물이 가득PHOTO BY 양희라
맑은 가을 새벽이면마음은 어김없이짙은 풀 냄새를 좇아뜨겁게 달아오른다.오름 분화구 산통 끝에갓 출산한 금빛 태양구름 이불 사이로얼굴 내미니영아리 산정호수엔볕이 한 보따리환하게 웃는 엉겅퀴 보며나도 웃었다.PHOTO BY 양희라
김동규의 노래가너무나 어울리는10월 어느 멋진 날오랜 해풍에끝내는 굽어진보목리 해안길앞뒤 잴 줄도 모르면서자벌레 걸음으로길을 걸었다.한기팔 시인이마음 옮겨 놓았다던섶섬이 눈앞이고소천지 맑은 물은작은 물고기와파란 하늘을 담았다.가을, 이 길 위에서내게 정말더는 소원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