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 선생은 스승이 돌아가시자 상복 입고 3년 예를 갖췄다
소농 오문복 선생에 대한 기억 - ④
소농 오문복 선생을 스승을 모신 지 40년이 되었다. 평생 흐트러짐 없이 살기가 쉽지 않은데 소농선생은 그동안 한 올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이셨다. 감히 지칭하건데 소농 선생은 이 시대 마지막 선비라 할 수 있다.

■ 소농 선생의 세 스승
소암 선생은 소농 선생에게 서예만 일깨운 게 아니고 예술혼마저 아낌없이 주신 분이다. 두 분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소농 선생은 스승인 소암 선생이 돌아가시자 3년 동안 하얀 두루마기(상복)를 입어 스승을 추모했다. 한편으론 3년 상 동안 호를 素農에서 小農으로 낮추어, 끝까지 스승에 대한 예를 다 갖추셨다.
소농 선생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전라도에서 다녔다. 소농 선생의 선친께서 전라도 지역에서 교편을 잡은 탓도 있지만, 그 당시 제주도 시골 생활이 힘들기도 했고, 가정형편도 불안정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광주에서 활동하는 의재(毅齎) 허백련 선생의 문하에서 그림 공부를하여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으며 의재 문하의 제자들과 아직도 소통하고 있다.

■ 소농을 스승으로 모신 사람들
이렇듯 고매하신 스승을 둔 소농 선생은 성산포문학회의 고문으로 추대되셨다. 문학회원들은 소농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며 정신적 학문적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매년 스승의 날엔 회원 전원이 경독재에 모여 소찬을 나누며 선생님의 작품(소품)을 하나씩 받는 즐거움을 누린다. 이렇게 관계를 맺고 인연을 이어가는 걸 필자 나름대로는 보람된 일이라 여긴다. 성산포문학회는 소농선생과 인연을 맺은 이후부터 선생을 저둘리기만 했다. 그 저둘림의 중심에 필자가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끔씩 경독재에 소농 선생을 찾아뵈면 건강한 듯 한데, 알게 모르게 불편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평생 술, 담배를 멀리 하셨지만 세월을 못 속인다는 말이 있듯이, 많이 야윈 모습이다.
다행인 것은 소농선생 몇몇 제자 중심으로 마지막 시(詩서)·서(書)·화(畵) 전시회를 금년 12월 초 문예회관에서 갖는다고 한다. 아마 소농선생 평생 연마한 서예 작품이 집대성한 모습이 연출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이름 하여 소농 오문복 미수전(素農 吳文福 米壽展)', 큰 성황을 이루길 기원하며 어쭙잖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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