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푹푹 내린 것 같은 돌담, 이 올레가 나의 나타샤

[주말엔 꽃] 올레 돌담을 덮은 사위질빵 꽃

집으로 들어오는 올레에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게 꽃으로 덮였다. 담쟁이처럼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줄기가 꽃 잔치를 펼쳤다. 여름 한낮 돌담이 발산하던 뜨거운 열기가 사위질빵 줄기로 한결 가라앉았다.


▲ 우리 올레(사진=장태욱)
▲ 올레 중간에 사위질빵이 돌담을 뒤덮고 있다.(사진=장태욱)

마을 안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려면 90미터 남짓한 올레를 지나야 한다. 제주도 올레는 여러 집이 함께 사용하는 좁은 진입로를 의미하는데, 지극히 사적인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나 다니는 길도 아니다. 공동체에 속한 몇 집을 위한 길, 그게 올레다. 난 이 올레가 좋아서 15년 전에 지금의 집에 터를 잡았다. 앞으로도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으면 이 올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올레는 여덟 가구가 함께 쓰는 길이다. 그러니까 올레 공동체가 여덟 가구로 구성됐다고 보면 된다. 예전에는 모두 마을 토박이들이었을 텐데. 지금은 이주민이 세 가구, 제주도 토박이가 네 가구다. 한 집은 최근에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비어 있다.

최근 몇 년 올레의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 마을 안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중간 지점에 사위질빵 줄기가 담벼락을 뒤덮고 있다. 동네 어른들인 이 풀을 잡초라고 생각해 뜯어내기를 바라는데, 몇 해 전에 이주해서 민박을 운영하는 ‘동생’은 그 풀을 뜯을 생각이 없다. 사위질빵이 민박집 뒤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담벼락에 풀이 무성한 게 ‘동생’의 풀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게을러서인지, 눈치가 부족하기 때문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 돌담이 사위질빵이 하얗게 꽃을 피웠다.(사진=장태욱_

어르신들은 잡초가 무성해진 담벼락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몇 해 전에는 이웃 삼춘이 낫을 들고 그 풀을 뜯어내는 것도 보았지만, 생명력이 강한 풀은 곧 예전 기세를 회복했다. 날로 기운이 떨어지는 삼촌은 그 풀을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고, 이젠 기세등등한 풀과 싸우기를 포기한 듯하다.

사위질빵은 원래 산기슭이나 계곡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해변 가까운 마을의 돌담까지 장악했다. 워낙에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이어서, 이 햇살이 잘 드는 골목을 제 터전으로 삼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전성기를 맞은 사위질빵은 여기서 뜨거운 여름 햇살을 맞고, 꽃대를 내고 꽃을 활짝 피웠다.


▲ 사위질빵(사진=장태욱)

사위질빵이 피어난 모습은 마치 담벼락에 함박눈이 소복이 내린 것 같은 풍경이다. 사위질빵 줄기가 담벼락을 덮은 탓에 돌담에서 발산하는 열기도 훨씬 줄어들었다. 거기에 향기마저 은은해 집으로 들어올 때 기분이 한결 유쾌해졌다. 이 모두 풀을 사랑하거나, 게으르거나, 눈치가 부족한 그 ‘동생’의 덕분이다.

시인 백석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사위질빵 흰 꽃이 푹푹 내렸다. 내가 사랑하는 나타샤, 그게 우리 올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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