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푹푹 내린 것 같은 돌담, 이 올레가 나의 나타샤
[주말엔 꽃] 올레 돌담을 덮은 사위질빵 꽃
집으로 들어오는 올레에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게 꽃으로 덮였다. 담쟁이처럼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줄기가 꽃 잔치를 펼쳤다. 여름 한낮 돌담이 발산하던 뜨거운 열기가 사위질빵 줄기로 한결 가라앉았다.


우리 올레는 여덟 가구가 함께 쓰는 길이다. 그러니까 올레 공동체가 여덟 가구로 구성됐다고 보면 된다. 예전에는 모두 마을 토박이들이었을 텐데. 지금은 이주민이 세 가구, 제주도 토박이가 네 가구다. 한 집은 최근에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비어 있다.
최근 몇 년 올레의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 마을 안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중간 지점에 사위질빵 줄기가 담벼락을 뒤덮고 있다. 동네 어른들인 이 풀을 잡초라고 생각해 뜯어내기를 바라는데, 몇 해 전에 이주해서 민박을 운영하는 ‘동생’은 그 풀을 뜯을 생각이 없다. 사위질빵이 민박집 뒤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담벼락에 풀이 무성한 게 ‘동생’의 풀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게을러서인지, 눈치가 부족하기 때문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르신들은 잡초가 무성해진 담벼락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몇 해 전에는 이웃 삼춘이 낫을 들고 그 풀을 뜯어내는 것도 보았지만, 생명력이 강한 풀은 곧 예전 기세를 회복했다. 날로 기운이 떨어지는 삼촌은 그 풀을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고, 이젠 기세등등한 풀과 싸우기를 포기한 듯하다.
사위질빵은 원래 산기슭이나 계곡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해변 가까운 마을의 돌담까지 장악했다. 워낙에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이어서, 이 햇살이 잘 드는 골목을 제 터전으로 삼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전성기를 맞은 사위질빵은 여기서 뜨거운 여름 햇살을 맞고, 꽃대를 내고 꽃을 활짝 피웠다.

사위질빵이 피어난 모습은 마치 담벼락에 함박눈이 소복이 내린 것 같은 풍경이다. 사위질빵 줄기가 담벼락을 덮은 탓에 돌담에서 발산하는 열기도 훨씬 줄어들었다. 거기에 향기마저 은은해 집으로 들어올 때 기분이 한결 유쾌해졌다. 이 모두 풀을 사랑하거나, 게으르거나, 눈치가 부족한 그 ‘동생’의 덕분이다.
시인 백석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사위질빵 흰 꽃이 푹푹 내렸다. 내가 사랑하는 나타샤, 그게 우리 올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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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