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때 집 불타자 조상 무덤가에 굴 판 화전민, 그의 운명은?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㉑] 남원읍 수망리 따비튼물화전과 구진다라이화전

앞선 기사에서 수망리 장구못화전에 살았던 양씨 집안, 고 씨 집안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전했다. 제주4.3 당시 화전민들은 토벌대에 피살되고 가옥은 무장대의 식량보관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조 씨 집안은 천주교인 가족이 있었는데, 이재수의 난 때 화를 피해 장구못화전에 들어오기도 했다.

수망리에는 장구못화전 말고도 다른 여러 화전이 있었다. 이번 기사에는 따비튼물화전과 구진다라이화전을 소개하는데, 두 화전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 수망리 1048번지 산전 돌답 옆에 남은 따비튼물화전 집터(사진=한상봉)

■따비튼물 화전

따비튼물화전은 ‘따비튼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화전이다. 화전과 산전 주변 자연지형을 이용해 흐르는 빗물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도록 땅을 파서 생활용수로 이용했다. 물이 모여든 낮은 곳에 따비로 땅을 파서 돌담을 둘렀는데 산전 돌담과 붙어 있다. 수망리 마을지에는 따비튼물이 임야에 있다고 기록됐다.

화전 집터 대나무 뒤에 기다란 머들에는 ‘따비튼물궤’가 있는데, 규모는 폭 3m, 높이 1m, 깊이 5m 정도다. 궤의 내부를 보면 뒤쪽으로 조그마한 구멍이 있어 밖으로 트여 있다. 궤 입구엔 돌담을 둘렀고 안에는 술병 등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 따비튼물화전 지역도 콩, 팥을 재배하고 목축을 했다는 내용이 수망리 마을지에 보인다.


▲ 따비튼물궤(사진=한상봉)

▲ 따비튼물화전에 남은 도기 파편(사진=한상봉)

따비튼물화전 주민들이 살았던 집터는 수망리 1048∼1050번지, 1053번지, 1054번지등인데, 특별히 1050번지 신성천의 화전에선 그릇 조각이 발견됐다. 따비튼물화전 지역은 고잡화전(고지 앞)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화전은 국림담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데, 주민들은 마은이오름 전면부를 생활 터전으로 삼아 숯을 굽기도 했다. 마은이오름 능선 400m 일원과 국림담 뒤쪽에 크고 작은 화전밭을 남겼는데 ‘마흐니숲길’을 걷다 보면 이들이 일군 산전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1914년 원적도에는 신성관, 신성천, 신성길 등 형제로 보이는 가족이 거주했으며 국림담 넘어 마은이오름 능선인 1053번지, 1054번지엔 김석천, 김〇〇이 살았다.
국림담 아래 목장지의 신 씨 일가 집터는 대부분 허물어져 있고 소나무가 자라 옛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1054번지는 무연고 골총(骨塚)이 있고 그 조금 아래에 집터가 남아 있다. 이웃한 1046번지, 1047번지에도 화전민이 살았고 집터 흔적이 남아 있으나, 누가 살았는지는 확인치 못했다.

■ 구진다라이화전
구진다리이화전은 ‘따비튼물’ 인근에 있어, 두 화전마을이 교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진다리이는 나무가 없는 풀밭 지역이었다. 마은이오름에서 남쪽 800m 거리에 5시에서 7시 방향에 있는 조림지역을 이른다.
수망리 1055번지, 1056번지 지역으로 이곳에는 현치〇, 김〇석이라 사람이 살고 있었다. 1055번지는 조림을 거치며 훼철된 상태였고, 1056번지에서는 깨진 사기그릇이 발견됐다. 남원리 거주 수망리 출신 김〇〇은 구진다라이 화전민을 똥세기 집터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느 날 수망리 김 씨 집에서 화전터 위쪽에 묘를 쓰게 되었는데 아래쪽에 있는 이 똥세기 집터에서 밥을 지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솥뚜껑이 옆으로 덜그렁거리며 흘러내려 밥을 짓지 못하게 되자 화전터에서 내려와 버렸다는 일화도 전한다.


▲ 구진다라이화전에 남은 집터(사진=한상봉)

수망리에서 묘의 후손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고조부 김정학(金享鶴)의 묘라 말했다. 30년을 한 세대로 보면, 적어도 1900년 전후로 사망했을 테니, 일제강점기 이전에 구진다라이모르에 화전 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도에 이장한 묘로 제주4‧3 때 후손 김두옥은 집이 불에 타자 산으로 피신을 해 이 묘소 곁에 굴을 파 수 개월을 숨어 지내며 목숨을 부지했기에, 조상의 공덕으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이외도 번지가 부여되지 않은 화전 집터가 가장 안쪽의 풍력발전기 뒤편 200m 지점에도 있다. 이곳은 지번 부여가 안 되어 있어 토지조사사업 이전에 화전지를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대나무, 양하, 집터 돌담, 마당 등이 남아 있어 사람이 살았음을 알린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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