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와 해수가 만나 원시비경, 쇠소깍은 효돈천이 내린 선물

[물이 빚은 도시 서귀포] 쇠소깍

처서가 지났는데도 가마솥더위가 물러갈 줄을 모른다. 삼복더위에나 찾아올 만한 열대야가 8월 하순까지 기승을 부린다. 이럴 때면 나무 그늘이 우거진 계곡이나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생각이 간절하다. 효돈에는 계곡과 나무그늘, 바닷바람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쇠소깍이 있다.

쇠소깍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최대 하천, 효돈천이 바다에 이르기 직전에 형성된 연못이다. 효돈의 옛 지명 쇠둔의 ‘쇠’와 연못을 의미하는 ‘소’, 내의 끝부분을 뜻하는 ‘깍’을 합해서 만든 지명이다. 효돈천이 하구에 호수를 형성해 바다와 만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쇠소깍. 효돈천이 해안에 이르기 전 지하에서 물이 솟는데, 두터운 조면암이 이 물을 떠받쳐 호수를 이룬다. 해곳에 해수가 드나들어, 수면이 조석과 연동해 높아지고 낮아지길 반복한다.(사진=장태욱_

효돈천은 백록담 서벽과 남벽에서 발원한 후, 산벌른내와 돈내코 계곡 등을 거쳐 쇠소깍에 이른 후 바다와 만난다. 중류에서부터 하류까지 여러 마을이 위치해 있다. 그런데 발원지 주변에 백록샘과 방아샘이 있고, 돈내코계곡과 하례2리 고살리 등에서 지하수가 쏟아지는데, 수질이 양호해 인근 마을의 식수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몇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구간이 건천이다.

효돈천이 돈내코계곡을 지난 후 영천오름, 칡오름, 걸서악 등을 차례로 휘돌아 하류로 흘러가면, 푸른 상록수림을 낀 바위 계곡에 이른다. 상록수림 계곡에서 지하수가 솟아나 길이 370미터의 깊은 호수를 형성한다.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하구호(河口湖)인데, 조석과 연동해 수면이 높아지고 낮아지기를 반복한다.


▲ 효돈천은 쇠소깍에 이르기 전 대부분 구간이 건천이다. 건천에도 조면암이 유수에 의해 침식되어 다양한 모습을 띤다.(사진=장태욱)

앞선 기사에서 제주도 지하수의 부존상태는 서귀포층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언급했다. 서귀포층은 한라산 중심부로 갈수록 지하에서 높은 곳에, 해변으로 갈수록 낮은 곳에 위치한다. 비가 내리면 빗물은 땅 속으로 스며든 후 서귀포층 위와 아래에 나뉘어 저장되는데, 서귀포층의 구조에 따라 해변에서는 지하수면이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에 존재한다. 쇠소깍은 이 지하수가 해변 가까운 곳에서 용천수 형태로 솟아났는데, 단단한 암석이 그 물을 받치고 있는 것이다.


효돈천 하구를 구성하는 암석은 대부분 '돈네코하와이아이트'라고 불리는 조면암이다. 쇠소깍 주변에 있는 예촌망도 조면암으로 구성된 용암돔이다. 약 40만 년 전, 제주도 동부에 현무암질 용암류가 다량 분출됐는데, 그 시기에 서귀포 해안에는 조면암질 용암류가 분출했다.


▲ 원시비경 때문에 쇠소깍은 수상레저의 메카가 됐다.(사진=장태욱)

효돈천은 돈내코계곡을 지난 후 해안에서 400미터 떨어진 지점까지는 건천인데, 많은 구간에서 조면암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조면암은 현무암에 비해 점성이 높기 때문에 5m 이상의 두꺼운 바위를 만들어낸다. 하례리 남내소나 쇠소깍 산물관광농원 인근에선 두터운 기반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유수에 깎여 바위 웅덩이가 되거나 폭포를 이룬 구조가 드러난다. 쇠소깍 역시 이 두터운 조면암질 바위가 유수에 깎여 U자 형을 이뤘고, 그 U자형 계곡에서 지하수가 솟고 바닷물이 들고나니 화구호가 됐다.

쇠소깍은 담수와 바닷물이 만나 짙은 푸른색을 띤다. 가물어도 쇠소깍에는 늘 물이 고여 있는데 주변 상록수림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연출한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이곳에 하효본향당이 있어 사람들은 이곳에서 건강과 풍요를 빌었다.

쇠소깍이 바다와 만나는 주변 해안도 눈여겨볼만하다. 쇠소깍 서쪽 해안은 검은 모래 사빈이 발달한 곳이다. 효돈천이 한라산 백록담변에서 발원하여 긴 여정을 거쳐 바다로 이어지는데, 큰 비가 내리면 많은 양의 자갈과 모래가 유수와 함께 흘러와 해변에 쌓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검은 모래 해변이 만들어진 것이다.

▲ 쇠소깍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사진=장태욱)


▲ 쇠소깍 주변의 검은모래해변(사진=장태욱)

쇠소깍은 그동안 인근 주민들의 놀이공간이었다. 쇠소깍 주변에 검은 모래사장이 있어 피서지로도 좋았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마을 청년들의 노력으로 쇠소깍의 신비로운 경관이 외부에 드러났다. 이곳에서 카약과 제주도 전통 뗏목인 테우를 타보는 것이 이젠 제주도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색 체험이 되었다.

신은 효돈천을 통해 이 마을에 쇠소깍과 검은모래해변을 선물했다. 서귀포엔 효돈천이 있어 풍요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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