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노비와 몰락한 양반, 함께 화전을 일궜다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②] 몰락한 이들이 갈 곳은 화전이었다

▲ 중문동 모른궤 화전터(사진=한상봉)

1794년(정조18년) 제주 목사 심낙수(1739~1799)는 한라산 중턱 산마장 운영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목장신정절목(牧場新定節目)」을 만들어 시행했다. 절목은 제주도내 국영 목장인 10소장과 별도로 운영되던 산마장의 실제 운영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 자료로 인정을 받는다.


백여 년 넘게 이어진 기근으로 인해 목장의 농토를 이용하는 이들이 있었고, 심 목사 부임 이전부터 목장밭을 갈아 이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목장으로 들어가 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에 심 목사는 부득이하게 절목을 만들어 목장운영 규칙을 정했다. 절목에 산마장을 침장(針場), 상장(上場), 녹산장(鹿山場) 등으로 구분하고, 구체적으로 지도를 그려 산마장 내 금경구(禁耕區)와 허경구(許耕區)를 표시했다.


▲ 「목장신정절목(牧場新定節目)」에 경작지를 목장과 구분한 그림(자료=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소장)

침장에는 ‘고영듸’와 ‘집터왓’이, 상장엔 '개남술'이, 녹산장에는 '해남굴'이 이 시기를 전후해 형성된 마을인 걸로 추정된다. 이들 마을에는 화전민이 살았던 집터와 울담, 밭담 등 당시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세기에 이르자, 조선의 경제구조를 뒤바꿀 전기가 생겼다. 순조 1년(1801)에 이르러 조정은 궁궐에 속한 노비인 내노비 3만6974명, 관청에 속한 시노비 2만9093명 등 총 6만6000여 명의 공노비를 혁파하라는 명을 내렸다. 『순조실록』1월 28일 자 기사다.

하교하기를, “선조(先朝, ‘정조’를 의미)께서 내노비(內奴婢)와 시노비(寺奴婢)를 일찍이 혁파하고자 하셨으니, 내가 마땅히 이 뜻을 이어받아 지금부터 일체 혁파하려 한다. 그리고 그 급대(給代)는 장용영(壯勇營)으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겠다” 하고, 인하여 문임(文任)으로 하여금 윤음(綸音)을 대신 지어 효유케 하였다. 그리고 승지에게 명하여 내사(內司)와 각 궁방(宮房) 및 각 관사(官司)의 노비안(奴婢案)을 돈화문(敦化門) 밖에서 불태우고 아뢰도록 하였다.

노비 명단을 궁궐 밖에서 불태우라는 명령인데, 겉으로는 사뭇 비장하게 들린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조정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 조치로 인해 한라산 아래 목장지대에는 화전마을이 늘어나게 됐다.

임진왜란은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무책임을 여실 없이 드러냈고, 평민과 노비층은 신분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재정이 부족해진 조정이 납속책을 시행하면서 신분제는 빠르게 동요했다. 여기에 재정이 부족해진 조정은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양인 수를 늘리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조정은 우선 관에 속했던 6만6000여 명의 노비를 해방하기로 했다.


▲ 무등이왓 중퉁굴 산전(사진=한상봉)

그런데 해방된 노비에겐 생계 수단인 토지가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기근이 이어졌다. 주인을 떠나 도망가는 사노비도 증가했는데, 노비의 힘에 의존하던 일부 양반들도 경제적 기반을 잃어 몰락했다.

경제적 기반을 잃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신분에 상관없이 관영목장 밖 10소장 위 토질 좋은 상잣 너머에 살며 마을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등이왓이나 모록밭 등은 그렇게 형성된 대표적인 목장화전이다. 1895년 작성된 호근리 화전동(생물도 고승진 작성) 호적초에는 양반계층을 뜻하는 ‘유생’, ‘청금’, ‘장의’ 등의 직책이 여럿 보이는데, 이는 화전민이 된 사람들 가운데 양반 출신도 상당 수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1894년의 갑오개혁으로 사노비가 해방되고, 관영목장인 10소장이 해체되면서 목장 안팎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한라산 아래에는 화전마을이 빠르게 늘어갔다.

<계속>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데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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