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 전체기사
  • 라이프
    • 궨당네
    • 여행
    • 사람이 사는 세상
    • 親Book 동네
    • 생활·문화·행사·관혼상제
  • 아카이브
    • 생활·생애사
    • 공간·공동체
    • 사건의 재구성
    • 기록의 발견
  • 이슈
  • 오피니언
    • 칼럼
    • 기고
  • 서사람TV
  • 연재
    • 동네 맛집
    • 서귀포 오석학교
    • 제주 사는 키라씨
    •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 기억의 재구성, 남영호 참사
    • 신화의 숲
    •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 양희라의 포토에세이
    • 평생교육
  • 특별판
    • 탐나는 서쪽
  • 공지사항
업데이트 : 2025년 07월 21일
  • 전체기사
  • 라이프
    • 궨당네
    • 여행
    • 사람이 사는 세상
    • 親Book 동네
    • 생활·문화·행사·관혼상제
  • 아카이브
    • 생활·생애사
    • 공간·공동체
    • 사건의 재구성
    • 기록의 발견
  • 이슈
  • 오피니언
    • 칼럼
    • 기고
  • 서사람TV
  • 연재
    • 동네 맛집
    • 서귀포 오석학교
    • 제주 사는 키라씨
    •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 기억의 재구성, 남영호 참사
    • 신화의 숲
    •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 양희라의 포토에세이
    • 평생교육
  • 특별판
    • 탐나는 서쪽
  • HOME
  • 기사검색

'한상봉'기자의 전체기사

영남동 피난민 집단 희생된 서호동 가시왓케, 원래 화전민의 땅이었다

조선총동부가 발행한 「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 중 제주지형도에는 각시바위 위쪽을 기준으로 서호동 산(山) 번지가 있다. 그런데 그 일원에 화전민이 살았다는 표시가 보이질 않는다. 또한, 이보다 4년 전 있었던 1914년 토지조사사업 종료 시에도 시오름 인근엔 지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한상봉 2025-01-08 08:39

고목 울창한 치유의숲, 과거엔 화전민의 터전이었다

호근동의 상잣은 각수바위(각시바위) 뒤 ‘상여왓’을 지난다. 상잣에서 산록도로 너머 시오름 남쪽의 ‘치유의숲길’ 내 국림담(속칭 중원이켓담)까지는 ‘중원이케’라는 호근마을 공동목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 이곳에 과거 화전민이 살았다. 지역민의 구술에 의하면 시오름 인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5-01-02 08:08

천주교 선교하러 화전민이 된 사람, 후손은 돈 벌러 일본에 가

서홍 호적초에 보이는 가구 수로는 1896년 34호 85명, 1897년 22호 75명, 1900년 7호 33명, 1905년 7호 34명 1907년 7호가 거주하고 있다. 서홍 호적초를 기반으로 당시 생물도화전에 거주했던 주민을 추적했다.■ 3통 4호 진명송(秦明宋)교생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2-05 11:16

울산 송정→제주 장전리 →서홍동 생물도화전, 이후 어디로?

제주도화전은 대체로 19세기 말까지 증가하다가 일제의 산림정책, 토지조사사업 등으로 인해 위축됐다. 서홍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1914년 토지조사사업 시의 지적원도와 서홍동 호적초를 비교해 생물도와 주변 화전이 어떤 변화 과정을 거치며 축소되었는지, 이들이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1-27 01:22

‘우람한 체구에 자연적인 용모, 한라산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사람들’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목장에 빠르게 화전이 형성된 배경을 앞서 설명했다. 관아는 목장화전 주민에게 장세와 가경세를 걷어들여 필요한 경비로 사용했다. 반면, 산림보호에 대한 재제로 곶화전은 목장 화전보다 늦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벌채와 관련해하여서는 마을에서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1-21 09:13

굶주린 시대, 화전민과 숲지기 곤장 쳐도 제주도숲 못 지켜

조선후기에 기후위기가 반복되면서 기근은 일상화됐고,  화전의 확대는 숲의 파괴로 이어졌다. 김영우의 『조선 숲은 왜 사라졌는가 : 2022』에는 숲의 파괴 과정을 담은 내용이 있다.  1500년대 임진왜란 후에는 도성 중심으로 산림이 훼손되었는데, 이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1-12 23:21

반복되는 기근에 굶주린 백성, 출륙 막으니 갈 곳은 화전뿐

생물도를 포함해 제주도화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들어가 살았을까?제주에 화전이 등장하는 기록은 『세종실록』에 고득종(高得宗)이 하잣 축성 건의와 관련한 기사에 나타난다. 1430년 2월에 하잣이 완성되며 목장 안 344호를 옮겼다는 내용이다. 4년 뒤『세종실록』에는 제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한상봉 2024-11-05 21:49

생물도화전은 화전사 연구의 나침반, 이름부터 틀려서야

서홍동 생물도 화전은 산록도로 북쪽 서홍동 2559~2564번지 일원에 살았던 화전 지역이다. 일제총독부가 제작한 「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중 제주지형도에 생물도(生水洞)가 보인다. 솔오름에 인접한 서북쪽 기슭에 동홍동 연자동이 있고, 그 서쪽 서홍동에 생물도가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0-30 09:42

오가작통 피해 화전 택했는데, 자손은 지방 거두로 부상

성종 16년(1485)에 반포된≪經國大典≫에는 오가작통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조문이 실렸다.‘서울과 지방 모두에 5가를 1통으로 하고 통에는 통주(統主)를 둔다. 그리고 지방에는 5통마다 리정(里正)을, 면(面)마다 권농관(勸農官)을 두고, 서울에는 1방(坊)마다 관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0-17 00:38

화전민 떠나고 무장대 은신처, 마침내 불러들인 주둔소와 골프장

일제강점기에 서귀포시 상효동 선돌 일원에 화전민 여러 가구가 살았는데, 이들은 선덕사 동쪽 인근 언물내의 물에 기대어 생활했다. 그 밖에도 화전은 선돌선원 북쪽과 서쪽에도 분포했다.■사두석화전 사두석은 남국선원의 동쪽 상효동 산 41번지에서 아래쪽 산 69-1번지 산록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0-11 09:05

깊은 산속에 이끼 낀 돌방아, 누가 왜 만들었나?

조선총독부가 1914년 토지조사를 완료하고 작성한 지적원부에는 상효리 선돌 일원에 화전 지번이 확인된다. 일제강점기에 선돌 일원에 화전민 여러 가구가 살았는데, 이들은 선덕사 동쪽 인근 언물내의 물에 기대어 생활했다. 그 밖에도 화전은 선돌선원 북쪽에도 드넓게 분포했다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9-27 09:15

맑은 샘물로 벼농사 짓겠다는 화전민의 꿈, 실패한 이유

조선총독부가 1914년 토지조사를 완료하고 작성한 지적원부에는 상효리 선돌 일원엔 세 군데 화전 지번이 확인된다. 상효리 1591-1593번지다. 상효동 1593번지는 선돌 앞 황솔나무가 있는 곳인데, 황솔나무 인근에 화전 가옥이 있었다고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다.▲ 선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9-11 01:15

법정사항일운동 선봉장, 선돌화전에 몸을 숨겼다

상효동 화전민은 산록남로 위쪽에 있던 상잣 위 ‘중원이케’와 숲 지역에 거주했었다. 『(제주동부)지역잣성유적보고서』에 따르면, 상잣은 상효동 1467∼1465번지 상효원과 골프장 경계-신효공동묘지-남록남로 도로 남측을 접하며 동쪽으로 이어진다. 이 공간에는 내가 여러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9-03 23:41

갑오개혁 때 국마목장 폐지, 화전 영역 커졌지만 모두 떠났다

앞선 기사에서 하례리 벵듸왓화전에 살았던 김 씨와 조 씨 일가에 대해 언급했다. 이들은 두 집안은 모두 대정읍에 살다가 먼 곳으로 이주해 화전민이 됐다. 조 씨 일가인 경우 가족이 천주교이이었는데 이재수의 난(1901년)을 겪은 뒤 보복을 피해 벵듸왓으로 이주한 것으로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8-29 07:33

‘이재수의 난’ 때 벵듸왓으로 들어와 화전 일군 대정사람들

남원읍 하례리의 대표적 화전마을은 제1횡단도로 수악산 인근에 있던 벵듸왓화전이다. 1914년 지적원도에는 벵듸왓화전에 가옥 10채가 표시됐는데, 1918년 제작된 「조선오만분일지형도」 제주지형도에는 14채가 나온다. 4년 사이에 4채가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 화전은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8-22 08:18

  • 1
  • 2
  • 3
  • 4
  • 5

최신기사

2025-07-21 08:27
생활·문화·행사·관혼상제

전생에 방탕아였다는 남계우, 석주명이 그 그림에 반할 수밖에

2025-07-20 00:05
생활·문화·행사·관혼상제

작열하는 태양 입에 물고 해녀 숨비소리 들으며 피어난 꽃

2025-07-19 10:38
여행

포구인데 피서객에겐 천국, 태웃개

2025-07-17 22:03
여행

아쉽다, 여기서 북한 술 한 병 못 챙기다니!

2025-07-17 08:07
공간·공동체

중문리 위에 상문리, 민란에 가담한 사람들

'한상봉'기자의 전체기사 인기기사

  • 1

    디아스포라, 불지옥 제주섬을 떠난 일가족의 처절한 몸부림

  • 2

    사형수 사위에게 안부인사도 받지 못한 노인, 원주 글방에 남긴 체취

  • 3

    민둥오름이던 물영아리, 숲이 빠르게 확산해 한라산 숲과 연결된다

  • 4

    옥수수대를 가루로, 대기근 때 굶주린 백성의 마지막 음식

  • 5

    ‘눈물이 핑 도는 자리물회’ 그건 고향이다

공지사항

언론사 소개

  • 언론사 소개
  • 연혁
  • 윤리강령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수집거부
  • 광고·제휴
  • 기사제보
  • 문의하기

제호 : 서귀포사람들 | 법인명 : 주식회사 서귀포사람들 | 등록번호 : 제주,아01168 | 등록일자 : 2023년 07월 21일
발행인·편집인 : 장태욱 | 주소 : (우)63591,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문로 6, 3층 | 발행일자 : 2023년 09월 15일
대표전화 : 064-733-4345 | 대표이메일 : [email protected]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태욱

서귀포사람들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3 서귀포사람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