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사항일운동 선봉장, 선돌화전에 몸을 숨겼다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㊳] 상효동 화전(1)
상효동 화전민은 산록남로 위쪽에 있던 상잣 위 ‘중원이케’와 숲 지역에 거주했었다. 『(제주동부)지역잣성유적보고서』에 따르면, 상잣은 상효동 1467∼1465번지 상효원과 골프장 경계-신효공동묘지-남록남로 도로 남측을 접하며 동쪽으로 이어진다. 이 공간에는 내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아래로 흘러 염샘이내(영천내)에 이른다. 해정구역 상 상효동 가장 동쪽 경계의 ‘언물내’를 기준으로, 내 서쪽에 ‘선돌’화전, 하례공동묘지 위 철탑 인근에 ‘기전모르’화전, 상효동 산 71번지를 중심으로 위·아래 지역인 ‘사두석’화전, 남국선원과 골프장 사이 ‘남당모르’ 화전, 가장 동쪽에 웃법호천 ‘양근이’ 지역에 한 채의 집이 화전으로 있었다.
이 상잣 위를 ‘중원이케(中源)’라 부른다. 중원(中源, 일본명 ‘나카하라’)이는 일제강점기 서귀포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사업가인데, 서귀진(西歸鎭)으로 흘러가던 정방폭포 위 ‘정모시’의 수로 물을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려 정미소를 이용했던 인물이다. 이 사람이 살던 집을 가파도 출신 이도백의 부친이 사들였고, 제주4‧3 때 이도백이 이 터에 굴을 파 숨어 지내다 발각되기도 했다. 상효동의 하잣은 서산벌른내와 영샘이내가 합수되는 자연지형이나, 실제는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자리인 ‘안간장’이 된다. 상잣 위 중원이케에 화전민이 살았던 것이다.
선돌은 5.16도로 남서교에서 선덕사를 지나 자동차로 5분, 도보로 30여 분 이내 거리에 있다. 선돌과 그 아래쪽 ‘벵듸왓’, ‘올란도’에도 화전민이 살았는데, 두 지역을 합쳐 한자로 입석동(立石洞)으로 불렀다. 지금도 버스정류소 안내 방송을 할 때면 입석동이란 명칭을 들을 수 있다.
선돌 앞에 화전이 있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일본인이 1905년 제주에 왔다 표고장을 그린 그림첩 『제주도여행일지』(민속원, 2016)에 보인다. 그림으로 남긴 이 책에는 선돌을 그려 놓고 그 아래 네 채의 집도 함께 일본어로 サンドラク(산도라구 : 선돌)라 표기했다.
이 그림에서 산림지와 목장지대를 구분하는 게 보이는데 선돌 앞까지가 과거 목장 지역이었음을 알수 있다. 1948년 항공사진에도 선돌 앞은 풀밭 지역이었음이 확인돼 40여 년간 식생 변화가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선돌 지역에 화전민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는 1914년 4월 종료된 토지조사사업 지적원도다. 이곳 선돌 일원엔 세 곳의 화전이 지번을 부여받은 게 확인된다. 부여받은 지번은 상효리 1591-1593번지다.
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에선 한 채가 다시 줄어들며 두 채가 보이고 있다. 앞서 1905년 『제주도여행일지』에 보이던 네 채의 집이 9년 뒤엔 3채로, 4년 후인 1918년 엔 두 채만이 확인되고 있어 서서히 화전민들이 떠나고 있음이 보이는 것이다.
참고로, 정확한 위치 비정은 알 수 없으나 법정사항일운동과 관련한 기록이 상효동 화전과 연결돼 신문기사로 실렸다. 법정사항일운동의 주동자인 강창규 스님에 관한 기사다. 강창규 스님은 전라북도 위봉사에서 출가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경험한 후 제주도에 들어와 관음사에서 생활한 뒤, 1911년 법정사가 창건되자 이곳에서 주지 김연일, 방동화 스님과 함께 거사를 준비했고, 1918년에 거사의 중심에 섰다.
「매일 신보」 1922년 2월 20일 자 황제 강창규 기사에 ‘강창규는 어디로 도망하였는바 4년 만에 작년 12월 28일 제주도 상효리 화전동에 잠복한 것을 동리 주재소 황산무장과 김 순사의 탐지한 바 되어 이 즉시 체포되었더라’라는 대목이 있다. 이로 본다며 강창규 스님은 도피하는 동안 불교와 관련된 선돌 화전에 와 살았을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선돌 화전민들이 살았던 자리를 보면 상효동 1593번지는 선돌 앞 황솔나무(소나무)가 있는 지점이 된다. 선돌선원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집터가 있던 것이다. 이 소나무에서 약 4∼5m 인근 잡나무 아래엔 사람이 살았는데, 양에(양하)가 자라는 걸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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