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때 국마목장 폐지, 화전 영역 커졌지만 모두 떠났다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㊲] 하례리 벵듸왓화전(3)

앞선 기사에서 하례리 벵듸왓화전에 살았던 김 씨와 조 씨 일가에 대해 언급했다. 이들은 두 집안은 모두 대정읍에 살다가 먼 곳으로 이주해 화전민이 됐다. 조 씨 일가인 경우 가족이 천주교이이었는데 이재수의 난(1901년)을 겪은 뒤 보복을 피해 벵듸왓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정으로 가 원로 천주교인을 통해 과거 천주교 교인명단을 확인해 보니 조 씨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 교인명단이 1901년보다 늦은 시점에 기록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하례리 마을지 『학림동』을 보면 ‘300여 년 전 고태형(高泰亨)이란 사람이 중문 대포리에서 이주하여 왔다. 당시에는 대부분 화전민들로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역시 벵듸왓, 올란도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이조(李朝) 고종 말 공마제도가 폐지(1894)되자 두수오름, 직사 등으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고…’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는 말을 생산해 조정에 공급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중산간 위쪽을 재편성해 10소장을 설치했다. 목장지 내에 경작은 금지됐지만, 일부 허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조정에 말을 공납하는 공마제도가 폐지되자 목장 내 개간이 활기를 띠었다. 상잣 아래 국마목장지에도 화전을 일구는 사람이 늘었다. 두수오름은 수악산보다 남쪽에 있는 낮은 오름인데, 국마목장이었다가 화전으로 변했다.

1914년 원지적도에 고 씨 성을 가진 사람이 확인되고 있으나 고태형의 후손이 벵듸왓에 살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여러 자료를 근거로 벵듸왓에는 조선 시대 말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통시끔 인근에 화전민이 살았던 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사진=한상봉)

그 외로 하례리 지역에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벵듸왓에는 오 씨와 현 씨 가족이 살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역시 구체적인 지번과 후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벵듸왓 위 하례리 산 1-9번지 ‘통시끔’ 동쪽 인근에도 산전과 집터가 남아있으나 누가 와 산전을 일구며 살았는지 확인이 안 되고 있다. ‘통시끔’은 한라산둘레길 수악길에 보이는 산정분화구 자리를 이른다.

벵듸왓에 속했던 하례리 1872번지와 1973번지를 방문해 현장을 확인했으나 집터 흔적이나 그릇조각 등이 없었다. 주변에 삼나무 조림과 묘들이 있고 길을 내며 집터 흔적이 사라졌었다. 하례리 1874번지는 집터 자리에 묘터를 조성했다 이장된 흔적이 있었으며, 하례리 1875번지는 지주에 의해 연못으로 변해 있었다. ‘검머들내’의 동쪽을 붙여도 산전을 일구며 살던 집들이 냇가 곁에 남아있는데 냇가 옆에서 오르내리는 오솔길에서 흔적을 볼 수 있다.

한편, 제1횡단도로 남서교 인근을 ‘올란도’라 한다. 올란도에도 두 가구가 살았음이 1918년 제주지형도에 보인다. 이중 박명환이란 사람이 살았던 사실이 마을지 『학림동』에 보인다. 화전민이 떠난 자리에 한국전쟁 후 부산갈매기, 춤추는 작은 소녀 등을 부른 가수 문성재의 부친이 이곳에 살기도 했었다. 하례리 1871번지 일원이다.


▲ 벵듸왓에 조성된 분수림. 1960년대 정부와 주민은 이곳에 분수림을 조성했다. 땔감을 팔아 정부와 주민이 수익을 나눈다는 목표로 조성됐는데, 이후 곤로가 보급되면서 수익 배분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대신 이곳에 나무들이 남아서 울창한 숲이 됐다.(사진=장태욱)

이후 1960년대 하례리 벵듸왓과 수악산과 주변 목장, 밧진모르 등은 분수림(나무를 심은 후 정부와 마을이 약정에 따라 가지기로 한 산림자원)이 조성됐다. 정부가 묘목을 대고 주민들이 삼나무 등을 심어 숲을 조성했는데, 곤로가 등장하며 밥할 때 땔감이 필요치 않게 됐다. 나무를 팔아 정부와 주민이 수익을 나눈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분수림 나무는 그대로 자라 고목이 됐다. 벵듸왓 화전 대부분은 산림지로 변했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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