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송정→제주 장전리 →서홍동 생물도화전, 이후 어디로?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㊼] 구한말 제주도 화전의 위축 과정

제주도화전은 대체로 19세기 말까지 증가하다가 일제의 산림정책, 토지조사사업 등으로 인해 위축됐다. 서홍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1914년 토지조사사업 시의 지적원도와 서홍동 호적초를 비교해 생물도와 주변 화전이 어떤 변화 과정을 거치며 축소되었는지, 이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추적해봤다.


▲ 1900년 무렵 서홍동 생물도화전에 거주했던 가구(한상봉 작성)


표를 보면 각 통의 1호는 통수(統首)이며 통을 거느리고 있는데 반드시 5통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당시는 오가작통(五家作統)제로 1, 2, 5통의 5호, 2통 4호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아 기존에 화전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했음을 알게 한다. 이미 1896년 이전부터 서서히 사람들이 화전에서 떠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화전민의 타지역으로의 이주하는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서홍 호적초에 보이는 가구 수로는 1896년 34호 85명, 1897년 22호 75명, 1900년 7호 33명, 1905년 7호 34명 1907년 7호가 거주하고 있다.

1896년 양반 직함을 가진 사람은 20명, 중인 신분 2명, 군인인 무인은 4명이다. 1896년의 서홍 화전동의 양반 직함 비율은 58%에 이르고 있다. 이와 관련 김동전은『19세기 제주사회연구-18, 19세기 제주도의 신분구조와 직역의 사회적의미 : 1997』에서 양반 비율이 점차 늘고 있었다고 했다. 지역적 비교는 없으나 생물도화전 지역에 양반 신분을 가지는 자가 증가한 이유는 다양하다.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도망한 노비, 갑오개혁으로 해방된 노비, 농민도 정부로부터 공명첩에 명시된 직위를 합법적으로 취득했다. 이들은 공명첩을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 1914년 항공사진에 나타난 생물도화전

또한, 이 서홍동 호적초를 보면 제주 각처에서 생물도로 화전민들이 이주했는데, 당시 이들의 신분은 제각각이었다.

서홍 호적초를 쓴 사람은 표에 보이는 고승진이다. 서홍 호적초는 현재 그의 후손 고○○이 소장하고 있다. 이 호적초를 작성한 후손에 따르면 증보부 고승진은 ‘추억의숲길’ 내 돌방아가 있는 곳에 살았고 생물도에서 훈장을 지냈다고 했다. 표의 후손이 확인되는 가계(家系)를 찾아 나서봤다.


▲ 생물도화전에 남은 집터(사진=한상봉)

■ 2통 3호 박종건
학생 박종건(朴宗建) 나이 50세(장전리)/ 조부 교생/ 처 김 씨 나이 56세/ 아들 교생 관용(寬用)나이 32세/ 아들 교생 양반 나이27세/ 초가 1칸.

구술자 장정리 박○철(1947생)의 가계도에 입도조는 박귀영(朴貴榮초명 貴金), 숙종 40년 갑오년(1714년)에 태어났으며 묘는 장전리 ‘밤박굴’에 있다. 제주 이주 전 경상남도 울산 송정에서 출생했으며 소년시절 제주 출신 양 아무개를 만나 함께 지내다가 제주로 입도해 장전리에 정착했다. 입도조 박귀영의 아들은 박문경(朴文鏡: 영조1748년 생몰미상)과 박문보(朴文寶)다. 이중 장남인 문경의 아들 후손이 족보에서 사라져 확인이 안 되는 가운데 장전리의 호구단자(호적초)에서 박원발(朴元發)과 아들 박사인까지는 확인이 된다. 하지만, 그 이후의 후손을 찾을 길이 없는 실정이다. 

한편, 두 번째 아들 박문보(朴文寶)의 후손은 구술자까지 이르고 있다. 이와 관련 족보에서 5대손이 모두 종(宗)자 돌림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족보엔 종권(宗權),종하(宗河) 등이 보인다. 종자(宗字) 돌림임을 미루어 본다면 가끔 명절 등으로 사촌지간에 만날 일이 있어 장전리에 들렸을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라 자녀들을 종(宗)자 돌림으로 형제간에 같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홍 호적초를 작성한 고승진이 기록한 이 가계도의 종건은 박 씨 입도 5대손으로 보이며 표에서처럼 고향도 장전리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화전민 박종건의 두 아들 중 박관용(朴寬用, 32살)과 동생(27살)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확인이 안 되고 있다. 서귀포 쪽으로 이동 했을 가능성이 높아 서호동, 호근동, 서홍동 등지에서 박 씨 가문를 찾아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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