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기 머금고 붉은 팝콘처럼 터지는 꽃

[주말엔 꽃] 배롱나무 꽃

장마가 지나가자 꽃이 귀해졌다. 한때 거리를 수놓았던 수국도 빛이 바랬고, 화사한 능소화도 꽃의 수가 부쩍 줄었다. 꽃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환경이 열리고 있다.

화사한 것들이 줄어드는 시기, 배롱나무 꽃이 피기 시작했다. 마을에 있는 연주 현씨(延州 玄氏) 가족묘지에 붉게 핀 꽃이 눈길을 끌었다. 큰 나무 두 그루가 제단 앞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듬직한데, 꽃은 아직 나무의 상단부에만 피었다.


▲ 어느 집안 가족묘지에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다.(사진=장태욱)

남원읍에 있는 엠유스토리라는 정원에도 꽃이 피었다. 현씨 가족묘에 있는 나무보다 크기는 작은데, 수십 그루의 나무가 꽃을 피워 제법 볼만해졌다. 보름 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니, 앞으로 두 달은 계속 꽃을 피울 것이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강희안이 1449년에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영남의 여러 고을과 촌락에 식재되어 있고 나무의 크기가 크다’는 내용이 나온다. 15세기 이전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확실하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인 만큼 나무는 추위에 취약해 중부 이북에 심으면 얼어 죽는 일이 많다. 그래서 영남과 호남, 제주에만 주로 자란다.


▲ 콩알만한 꽃망울에서 마치 낙하산을 펼치듯 6장의 꽃잎이 펼쳐진다.(사진=장태욱)

나무는 가지 끝에 초록색 콩알만큼 한 꽃망울이 포도처럼 주렁주렁 맺히는데, 이것들이 7월 중순부터 폭죽을 터트리듯 순서대로 꽃을 터트린다. 작은 꽃망울에서 낙하산 여러 개가 동시에 펼쳐지듯 미역귀처럼 구겨진 붉은 꽃잎 6장이 펼쳐진다. 꽃잎은 길쭉한 자루 끝에 구겨진 부채가 달린 모양이다. 그 불꽃쇼가 100일 동안 이어지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이 꽃을 백일홍이라 불렀다고 한다. 백일홍이 배기롱으로, 다시 배롱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석 달 열흘 붉은 적 있었다
봉분 너머 또 봉분 거느리는 배롱나무
벌초 날 시간차 공격/ 속수무책 당할 뿐

-김영순의 시 ‘배롱나무’


예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조상의 무덤가에 주로 심었다. 돌아가신 조상이 이 꽃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게 하겠다는 효심(孝心)에서다. 무덤가에 배롱나무를 심으면, 나무는 커서 꽃을 피우고 그 와중에 무덤은 조금씩 늘어간다. 시인이 배롱나무가 봉문 너머 또 봉분을 거느린다고 표현한 이유다.


▲ 개인 주택 입구에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다.(사진=장태욱)

그리고 꽃이 졌다고 생각하면 따른 꽃이 또 핀다. 마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붉은 꽃의 공습, 시인은 그걸 ‘시간차 공격’이라고 했다.

조상 무덤가에 심던 꽃을 지금은 거리에도 뜰에도 심는다. 꽃이 귀한 시절에 붉은 빛을 발하는 그 고결함을 사람들이 흠모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선 동백이 피기 전에는 배롱나무가 눈요깃거리가 된다.

나무의 줄기는 매끄럽고 노루 다리처럼 가늘다. 나무가 미끄러워 육지부에선 ‘미끄럼나무’라고 부른다. 제주도에선 ‘저금 타는 낭’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적금을 받는 나무’라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저금’은 저축이 아니고 ‘간지럼’, 그러니까 문지르면 간지러운 나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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