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색 광택의 ‘달걀’을 품은 꽃, 이 좋은 걸 어쩌랴!!

[주말엔 꽃] 가지 꽃

장마가 길어져 지루하던 차에, 집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우아하게 보라색 옷을 차려입었는데, 꽃가루를 품은 수술대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한꺼번에 떼로 몰려온 게 아니라서 더욱 정이 간다. 이제 가지가 열매를 맺을 시간이다.

가지는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가 원산지인 열대 식물이다. 인도의 고산지대에서 가지의 원종으로 보이는 나무가 자란다는 보고가 있고, 이미 5세기에 아라비아반도 전역에 가지가 재배된다는 기록이 있다.

일찍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신라에서 가지가 재배됐는데 꼭지가 길쭉하고 끝은 달걀모양이라며, 맛이 달아서 중국에서도 수입해 재배한다는 기록이 있다. 해동역사가 1823년에 완성됐으니, 당시에 이미 가지에서 한류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 마당에 가지가 꽃을 피웠다.(사진=장태욱)

아라비아와 페르시아를 통해 아프리카와 유럽에 전해졌는데, 17세기에야 유럽 남부에서 즐겨 이용하게 되었다. 17세기 영국 동부 에식스에 살았던 윌리엄 코이스는 자신의 정원에 신대륙 버지니아에서 들여온 새로운 식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그의 정원에는 북나무, 미역취, 가지, 수박, 박 등이 있었는데, 당대 식물학자들이 여기서 씨를 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지를 서양사람들은 에그플랜트(eggplant)라 부르는데, 열매가 자라는 모습이 마치 달걀이 달린 것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조상들은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집 근처에 공터가 있으면 채소밭으로 만들었다. 곡물을 심고 남은 땅이나 논둑, 밭둑에도 채소를 심었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채소를 사랑하고 텃밭을 가꾼 것으로 유명한데, 오이, 가지, 무, 파, 아욱, 박 등 여섯 가지 채소를 읊은 한시 「가포육영(家圃六詠)」이 전한다. 그 가운데 가지에 대한 대목이다.

<茄>
浪紫浮紅奈老何(낭자부홍나노하)
看花食實莫如茄(간화식실막여가)
滿畦靑卵兼熟卵(만휴청란겸정란)
生喫烹嘗種種嘉(생끽팽상종종가)

<가 : 가지>
자색바탕에 홍조를 지녔으니 어찌 늙었다 할 수 있는가
꽃과 열매를 같이 즐기기는 가지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밭 안에 파란 가지 익은 가지 가득하니
생으로도 먹고 익혀서도 참으로 좋구나

가지 꽃은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다. 보라색 조그마한 꽃이 소박하고 단아한데, 그 떨어진 자리에 짙은 보라색 광택이 나는 큼지막한 열매가 맺힌다. 익혀서도 먹을 수 있고, 그냥 생으로도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작물이 어디에 있을까? 이규보는 가지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가지는 채소로 분류되지만 사실 다년생 작물이다. 조선시대 제주도민 김비의와 강무, 이정 등은 1479년 감귤 진상품을 배에 싣고 전라도로 향하던 중 추자도 부근에서 강풍을 만났다. 그리고 14일 동안 풍랑에 악전고투한 끝에 유구국(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유구국의 선처로 조선에 돌아왔는데, 성종은 홍문관에 명하기를 김비의 등이 유구국에서 보고 들은 바를 조사하라고 했다. 김비의 등이 전한 내용에 가지와 관련한 내용이 들어 있다.

‘채소로는 마늘·가지·참외·토란·생강이 있는데, 가지의 줄기 높이가 3, 4척이나 되고 한 번 심으면 자손(子孫)에게까지 전하는데 결실(結實)은 처음과 같고, 너무 늙으면 가운데를 찍어 버리나 또 움이 나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1척이 약 33센티미터니, 가지나무 크기가 1미터가 넘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나무를 심으면 자손까지 이어진다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겨울이 없는 오키나와에선 가지가 마치 과일나무처럼 자랐던 것이다.

가지가 마당에 꽃을 피웠으니, 며칠 후면 달걀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릴 것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작물이 어디 또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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