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안으로 삼켜 성장드라마를 준비하는 꽃
[주말엔 꽃] 금감 꽃
무더위와 씨름하는 계절이다. 잠을 자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괴로운 시간이다. 에어컨에 의지해서 낮 시간을 보내는데, 이게 없을 땐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보며 의아해진다. 그런데 귤나무 가운데 이 무더운 여름을 특별히 기다리던 나무가 있다. 바로 금귤나무인데, 꽃을 하얗게 피워 다가온 여름을 기쁘게 맞고 있다.
볼일이 있어 서귀포농업기술센터를 찾았는데, 마당에 조경수 금귤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린아이 새끼손톱만큼 작은 꽃이 꽃잎을 펼쳤다. 이른 것을 꽃잎이 떨어져 그 자리에 작은 씨방이 맺혔다. 이제 무더운 날씨를 배경으로 땅의 양분과 햇빛을 안으로 당겨 열매를 키우는 성장 드라마를 써갈 차례다.
금귤은 봄철 가지치기를 하면 거기서 새순이 돋는데, 그 새순에서 바로 꽃을 낸다. 봄철 가자치기가 중요한데, 그것만 잘해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이 핀다. 지금 꽃이 떨어진 자리에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얀 꽃이 땅을 뒤덮었다.
사실, 금귤은 여름에 두 차례 꽃이 핀다. 지금처럼 장마가 끝날 무렵에 한껏 꽃을 피우고, 8월 무더운 날 또 한 차례 꽃을 피운다. 일찍 핀 꽃은 열매도 일찍 키워내고, 늦게 핀 꽃은 열매도 늦어진다. 그래서 수확도 1월 말과 2월 말, 두 차례에 이뤄진다.
금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문헌에 기록된 금귤(金橘)이나 당금귤(唐金橘)을 금감(金柑)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 품종을 설명한 고문서의 내용을 보면 금감과는 차이가 크다.
1777년 정조시해사건에 연루돼 제주에 유배됐던 조정철은 유배시절 쓴 글을 모아『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을 펴냈다. 거기에 감귤을 품종별로 기술한 대목이 있는데, 당금귤에 대해서는 ‘껍질이 지극히 얇아 조금만 닿아도 곧 부서진다.’라고 했고, 금귤은 ‘9월 10일이나 15일이면 이미 노랗게 문드러진다.’라고 했다. 우리가 지금 보는 금감과는 각기 다른 귤임을 알 수 있다.
금감의 원산지는 말레이시아와 중국인데, 중국에는 남부 하이난도에 많이 분포한다. 중국의 금감은 이후 일본에 정착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일본인들은 금감을 일본식으로 킨칸(キンカン)이라 부른다. 제주도에서는 일본식 이름과 비슷하게 ‘낑깡’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금귤에 껍질에는 다른 과일에 비해 몸에 좋은 영양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칼륨 성분은 껍질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항균작용이 있는 비타민 C도 풍부하다. 비타민 P의 본체인 헤스페리딘(Hesperidin)도 많고 과일로는 드물게 칼슘도 함유한다. 그런데 이런 양분이 껍질에 많은데, 당분 함량도 열매 속보다는 껍질이 높다. 금귤은 감귤류 가운데 유일하게 껍질째 먹는 된 이유다.
일본인들은 금감을 좋아하고, 그만큼 금귤을 먹는 방식도 다양하다. 생으로 먹는 사람도 있지만, 금귤로 잼이나 시럼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리고 설탕을 넣어 조려서 먹기도 하고, 드레싱에 활용하기도 한다.
지금 제주도에서 재배되고 있는 금감 품종은 일본에서 도입된 것들이다.
금귤은 2월 전후로 수확하기 때문에 월동을 잘 해야 한다. 그래서 제주도 금귤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다. 따뜻한 해안가라면 노지재배도 가능하겠지만, 최근 겨울철 북극한파가 빈번하게 몰려오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제주도에서의 금감이 본격적으로 재배된 건 1990년대 우르과이라운드가 발효되면서부터다. 이전에 농수산식 비닐하우스에서 파인애플을 재배하던 농가들이 파인애플 가격이 폭락하자 금귤로 재배 작물을 바꿨다.
그런데 이후에 한라봉이 도입되고 농가가 비닐하우스를 시설할 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많은 이들이 신품종 만감류로 전환했다. 국내에서 금귤을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아, 시장 가격이 한라봉이나 천혜향 등에 미치지 못한다. 많은 농가가 금귤 재배를 포기하는 추세다.
여러 기능성 성분을 감안하면, 금귤 재배면적이 줄어드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게다가 고온을 좋아하는 작물 특성 상 기후변화 시대에 오히려 더 장려해야 할 작물로도 판단된다. 수익성이 떨어져 재배를 포기한 농가를 탓할 일은 결코 아니고, 금귤 기능성을 홍보하거나 레시피를 개발해 보급하는 일에 농정당국이 더 적극 나서야 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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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