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인데 흑돼지수육에 옥돔구이까지, 남는 게 있을까?

[동네 맛집 ④] 남원읍 신례리 ‘행복나무 식당’

예전엔 밭에 일을 갈 때면 으레 점심을 준비했다. 집에서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국은 밭에서 끓였다. 생선이나 고기를 구울 일이 있으면, 역시 밭에서 나무로 불을 지피고 숯으로 생선이나 고기를 구웠다. 밭에서 먹는 점심은 나름대로 운치와 낭만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밭으로 점심을 준비해가는 풍경이 사라졌다. 집집이 자동차가 있으니 차를 타고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준비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도 있고, 주인이 그런 일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달라진 풍토 때문에 농촌에 오히려 음식점이 늘고 있다. 농민들은 거리와 입맛을 고려해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골라 점심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1년 전부터 점심에 단골로 이용하는 음식점이 있다. 1만원짜리 정식요리를 파는데, 찬이 고급스럽고 푸짐해 찾는 사람이 많다. 점심 때 자리가 부족해 줄을 서는 일쯤은 감내해야 한다. 공천포전지훈련센터 입구에 있는 ‘행복나무 식당’이다.

이 식당이 주로 파는 정식요리는 흑돼지수육정식과 등뼈찜정식 두 가지인데, 모두 1만원이다. 물가가 하도 올라 1만원 아래 음식을 찾기도 어려운데, 이 집은 1만원에 수육과 옥돔, 찌개를 포함해 한상 푸짐하게 나온다. 우리가 여기서 주로 먹는 음식은 흑돼지수육정식이다.

이 식당에서 자주 먹었지만, 주인장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드나드는 손님이 워낙 많아 주인장이 서빙에 정신이 없으니, 말을 거는 것조차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4일에는 일부러 1시30분쯤, 그러니까 점심손님이 거의 썰물처럼 빠질 무렵에야 식당을 찾았다. 두 테이블을 제외하고 손님이 모두 나간 뒤였고, 테이블마다 빈 그릇이 수북했다. 그런 상황에서 흑돼지수욕정식 2인분을 시켰다. 아마 우리가 그날 마지막 손님이었을 것이다.

테이블 정리가 끝나자마자 찬과 밥을 포함해 얼른 한상이 나온다. 찬으로 호박무침, 가장게장, 고구마튀김, 당면, 김치, 게란찜, 무채가 나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돔배 위에 수육이 나오고, 구운 옥돔 한 마리가 나온다. 그리고 순두부와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된장찌개까지. 이게 1만원이니, 손님이 줄을 설 수밖에.





손님 대부분이 빠져나간 뒤라 주인장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1년 가까이 들고난 음식점이고보니 주인과 객이 서로 얼굴은 익숙했는데 이제야 처음 말을 트게 됐다.

주인장은 몇 해 전까지 서울에서 다른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 다른 일이라는 게 국회의원 보좌였다. 서울에서 고시원에 방을 잡고 혼자 생활하는 게 고단하기도 했고, 돌봐야 할 집안일도 있고 해서 보좌관 일을 그만두고 내려왔다. 눈치로 보니 그 일이 맞는 체질도 아닌 듯 했다.

생계를 위해 처음에는 부인이 이곳에 뷔페식당을 열었는데, 반응이 기대 이하였다. 그래서 다시 정식백반으로 음식을 바꿨는데, 그게 통했다. 11시30분만 지나도 자리가 없어 기다리고 먹는 일이 보통이다.

이곳 음식은 앞에 언급한 대로 반찬이 푸짐하다. 그리고 수육만도 좋을 텐데, 거기에 옥돔구이와 간장게장까지 내온다. 그래도 가격은 1만원.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사먹는 입장에서도 남는 게 있을 지 걱정이다. 주인장 부부와 직원 두 명이 일을 하고 바쁠 때는 주인장의 어머니가 주방 일을 돕는다.

주인장은 “가게에 동시에 40명 정도 손님을 받을 수 있는데, 두 번 회정하면 60~70명, 세 번 회전하면 100명입니다. 100명 정도 받으면 좀 남는데, 그렇지 않으면 별로 먹을 게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음식점은 오전 11무렵부터 문을 여는데, 점심장사만 한다. 좁은 공간에서 3시간 남짓한 시간에 100명 손님을 대접하는 게 쉽지가 않아 보인다. 오지랖 넓게 공간이 넓은 곳으로 옮기든가, 저녁장사까지 하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그런 생각을 주인장인들 안 했겠나?




오전 11시 넘어 생각나무 식당에 가면 왁자지껄 몰리는 농부들을 볼 수 있다. 그러데 가끔 그 틈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관광객도 보인다. 대도시에서는 1만원에 이런 음식을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이다.

메뉴는 흑돼지수육정식, 등뼈찜정식, 소고기육개장인데 모두 1만원이다. 위치는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로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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