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된 귤꽃축제와 공자님의 말씀

[칼럼] 장태욱 대표기자

4월이 되면 서귀포 마치 소금을 뿌려놓은 것처럼 하얀 꽃망울이 농장을 뒤덮는다. 그리고 꽃망울이 하나 둘 벌어지며 꽃잎을 펼치기 시작하면, 농장은 하얀 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벌어진 꽃이 내뿜는 향기까지 더해지면 잠든 여신을 흔들어 깨울 것 같은 생기가 흘러넘친다. 귤꽃이 불러온 축복의 시간이다.


▲ 봄이 되면 귤꽃이 농장을 뒤덮어 장관을 이룬다.(사진=장태욱)

15세기 초 프랑스인들은 오렌지 꽃을 사랑, 장수, 번영의 상징으로 여겼다. 빅토리아 시대, 기독교 문화에서 이 꽃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했다. 그런 문화적 배경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프랑스에서 신부는 오렌지 꽃 부케를 들었다.

오렌지 꽃은 향수의 소재로 주목을 받았다. 꽃을 증류 하면 향기로운 꽃 에센셜 오일이 생성된다. 그리고 기름을 증류하고 남은 물은 과자의 재료나 음료의 맛을 내는 재료로 사용된다. 16세기부터 프랑스 남부에서는 향수를 제조하고, 조미료로 사용되는 오렌지 꽃수를 생산할 목적으로 오렌지를 재배했다.

서양에서 사랑을 받았던 귤꽃이 서귀포시에도 문화적 불러오고 있다. 서귀포시 문화도시센터(센터장 이광준)가 귤꽃을 주제로 축제를 기획하면서 생긴 변화다.


▲ 4월 27일, 하례1리 귤꽃별씨축제에서 주민과 관광객이 마을에서 함께 퍼레이들을 펼치는 장면(사진=장태욱)

문화도시센터는 4월 27일부터 5월 11일까지 두 주 동안 노지문화축제 '봄꽃하영이서'를 개최했다. 지역 자원인 감귤꽃 향기를 매개로 마을문화와 문화예술을 융합해 도시브랜드를 창출하고 문화적 활력을 불러오겠다는 취지로 기획한 축제다.

서귀포시는 축제를 앞두고 2월부터 전문 기획자와 축제 희망마을이 참여한 가운데 축제 아카데미를 열었다. 그리고 공모를 거쳐 하례1리, 신례1리, 토산1리, 위미1리, 보목마을, 서호마을, 의귀리, 덕수리, 상효2동 등 8개 마을을 축제 개최마을로 선정했다. 필자가 몇 개 마을 축제 현장을 확인한 느낌을 알리려 한다.

4월 27일에 위미1리와 하례1리, 신례1리, 토산리에서 축제의 막이 오르자 예상을 뛰어넘는 분위기가 펼쳐졌다. 유명 인사를 소개하는 개막 의전도 없고, 유명 연예인의 무대 공연도 없이 오롯이 주민과 여행객이 모여 난장을 펼치는 현장, 각 마을은 거대한 무대가 됐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스스로 기획한 축제로 자기 색깔을 충분히 드러냈다.


▲ 이번 귤꽃축제의 특징은 어린이 참가자들이 많았던 점이다.(사진=장태욱)

하례1리는 귤꽃별씨라는 신화적 스토리를 제시하며 귤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전통 잔치문화를 재연하며 주민과 여행객이 맛있는 음식을 나눴다. 또, 용을 앞세운 가운데 인파가 마을길을 돌면서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적은 예산으로도 창조적 일탈, 공동체의 결속, 전통의 계승, 마을 브랜드 구축 등 축제가 추구하는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

위미1리는 감귤 화폐를 만들어 마을이 감귤 주산지임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걸로 간식을 사먹을 수 있도록 뙤미상점도 운영했는데, 다양한 곳에서 온 어린이들이 마을 구석구석을 함께 누비며 우정을 다졌다. 또, 농장에서 캠프파이어를 열어 어린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기도 했다.

의귀리는 5월 5일 어린이날, 흩날리는 귤꽃과 함께 의귀리 꽃차를 체험하는 행사를 구상했다. 어린이날 비가 쏟아지자 비닐하우스와 귤 창고를 축제장으로 활용했다. 비닐하우스에 활짝핀 귤꽃, 그 풍경과 향기가 아이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됐다.


▲ 5월 11일, 상효2동 축제 현장(사진=신승훈)

그리고 5월 11일, 덕수리와 상효2동에서 마지막 한마당이 펼쳐졌다. 상효2동 주민들은 농장을 개방해서 관광객이 쉬거나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삼촌바, 푸드마켓 등을 운영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로컬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치는 도중 비가 내려도, 많은 어르신은 자리를 지켰다. 행사 마무리에는 사람들이 도로에게 쏟아져 함께 비를 맞았다. 그곳에서 퍼레이드를 펼치고 율동도 하면서 축제를 마무리했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라는 의미로 공자가 남긴 말이다. 초나라의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을 걱정하는 섭공에게 공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해야 멀리 사는 사람들이 찾아와 정착해 살 것이라고 조언했다.


▲ 농촌이 활력을 띠기 위해서는 모두가 즐겁게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귤꽃축제가 남긴 경험과 성과는 적지 않다.(사진=신승훈)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이 모든 지방이 안고 있는 공동적인 화두가 된 시대다. 젊은이들은 문화적 낙후와 불리한 교육여건, 부족한 일자리 등을 이유로 농촌을 떠난다. 젊은이들이 떠나면 농촌은 활력을 잃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농촌이 활력을 가지려면 당연히 사람이 모여야 하고, 사람이 모이려면 현장에 사는 주민이 즐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각자 즐겁게 사는데 익숙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봄꽃하영이서' 축제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다른 지역 사람을 불러들여 즐겁게 노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은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귤꽃이 다시 필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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