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수명 연장하려는 절박함, 이 꽃에 있다

[주말엔 꽃] 해바라기

체험농장을 준비하는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농장에는 여러 품종의 꽃이 자라는데, 셀 수 없이 많은 나비가 그 안에 터를 잡고 있다. 겉으로는 한가로워 보이는 나비. 사실은 꿀을 채취하거나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 등 저마다 분주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드러내느라 분주한 여름이다.

농장에 피어난 꽃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건 해바라기다. 여름 꽃 중에는 키가 가장 크고 , 지름이 50센티미터에 달한다. 큼지막한 꽃은 한눈에 분위기를 압도한다. 거기에 꽃이 둥글기까지 하니 풍성한 게 평화롭기까지 하다.


▲ 나비가 해바라기의 꿀을 채취하는 장면(사진=장태욱)

해바라기는 북아메리카에 자생하던 식물로, 기원전 1000년부터 이미 아메리카 인디언에 의해 재배되었다. 미국 서부 인디언은 야생 해바라기를 식용유와 식품, 약품으로 썼다고 한다.

16세기 초반,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해바라기를 유럽에 소개했다. 처음에 유럽인들은 해바라기를 화초로 재배했다. 그런데 해바라기 씨에 함유된 성분이 알려지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 해바라기는 나비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사진=장태욱)

해바라기 종자에는 필수아미노산이 비교적 균형 있게 들어있고, 45~60%의 기름이 함유됐다. 기름에는 양질 지방산으로 불리는 리놀레산 비중이 놓고,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는 포화지방산은 거의 없다. 해바라기 기름은 샐러드나 마가린용으로, 씨는 과자나 빵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 볶아서 간식으로도 먹는데, 야구선수나 감독이 덕아웃에서 해바라기 씨를 먹는 건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화초로 재배되던 해바라기의 운명이 바꾸기 시작한 건 러시아에 소개되면서부터다. 러시아인들이 앞서 소개한 해바라기 씨의 유용한 성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18세기 후반에 지름 30cm가 넘는 거대 해바라기 재배에 성공했고 해바라기 기름 추출법을 개발했다. 해바라기가 작물로 대량 재배되기 시작했다.


▲ 흰 나비와 노란 해바라기가 대조를 이룬다.(사진=장태욱)

러시아에서 개량종 해바라기가 재배되는 걸 보고, 미국이나 유럽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 해바라기 품종을 도입해 재배하기 시작했다. 기후 여건을 가리지 않는 해바라기는 글로벌 작물로 변모했다.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가 해바라기 그림을 즐겨 그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흐는 1888년 무렵, 프랑스의 남부 작은 마을 아를과 셍레미에 거주하면서 해바라기 작품 7점을 그렸다. 당시 고흐가 거주하던 프랑스 아를은 기름을 얻기 위해 해바라기를 재배하고 있었다. 폴 고갱이 고흐를 만나러 아를에 오기로 했을 때, 고흐는 해바라기 장식으로 기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거든.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말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고흐에게 해바라기는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맹감본풀이는 액을 막아 목숨을 연장하는 내용의 제주도 서사무가다. 환자의 치료를 위한 ‘시왕맞이’ 굿에서 부르는 노래다. 맹감본풀이에는 가난한 사만이와 아내가 나온다.

사만이 부부는 가난해 먹을 게 없었다. 아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주며 팔아서 쌀을 사 오도록 했다. 사만이는 쌀 대신 총을 사서 사냥을 다녔는데, 산에서 백년해골을 발견했다. 어느 날 저승차사가 명이 다했다며 사만이를 잡으러 오려 하자, 해골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연명 방법을 알려줬다. 정갈한 음식을 차려 저승차사를 대접하라는 제안인데, 사만의 아내는 해골시 시키는 대로 따랐다. 저승차사는 배가 고파 사만의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배불리 먹기는 했는데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은 사만의 수명을 삼십(三十)에서 한 획을 그어 삼천(三千)으로 바꿔버렸다.

시인 박현솔은 맹감 본풀이를 ‘해바라기 신화’라며 시까지 지었다. 남편만을 바라보고 수명까지 연장시킨 사만의 아내가 늘 해바라기처럼 남편을 환하게 비쳐줬다는 내용이다.


▲ 지난해 제 1회로 열렸던 영천동 해바라기 축제(사진=장태욱)

영천동 해바라기 축제가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귀포시 토평동 헬스케어타운 주변에서 열린다. 지난해 처음 열리고 올해가 두 번째로 열린다. 나비박사로 유명한 석주명 선생이 영천동에 소재한 경성제대 생약연구소 제주시험장에서 연구활동을 했던 사실을 기반으로 마련한 행사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이다. 가족의 가치가 경시되는 시대, 사만이 아내처럼 부부나 연인이 서로에게 ’일편단심‘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서민의 주머니 상황이 어려운 시대에는 그런 마음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해바라기 활짝 핀 들녘에 꿀과 나비가 찾아오면 천국의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더해지면, 그곳이 에덴동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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