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비가 내린 후 다시 추위가 몰려왔다. 이런 날씨엔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 그리워진다. 인심 좋은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북적대는 객들에 섞여 국밥 한 그릇 비워내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가마솥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김 주인 아낙/ 넉넉한 인
꽃꽂이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꽃꽂이 수업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지요. 꽃을 꽂을 때만큼 행복한 시간이 없었거든요.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답니다. 기다렸던 꽃꽂이 수업을 하러 가면 바스켓에 오늘 꽂을 꽃들이 한아름씩 테이블
갑오개혁 이후에도 제주목장은 10소장 자체가 폐장된 것이 아니라 운영되고 있었다. 10소장이 남아 있었고, 여기에 화전민이 거주하며 각종 세금을 납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인이 남긴 기록으로 확인된다.▲ 상문리 화전민 터(사진=한상봉)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여세를
남영호는 1970년 12월 9일 부산항을 출항해 서귀포항에 도착한 후 10일 출항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남해안에 폭풍주의보가 발효돼, 4일간 서귀포에 체류하고 바다가 잠잠해지고 난 후에서 운항을 이어갈 수 있었다.그리고 그해 14일 오후 5시, 서귀포항을 출항했다
서귀포시 중앙동에 6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야학, 오석학교가 있습니다. 약 50명의 자원봉사 교사와 100명의 만학도 어르신이 있는 교육공동체입니다. 글을 몰라 한글을 처음부터 배우시는 반부터, 고교 졸업 검정고시를 공부하는 반까지 다양한 반이 있습니다. 오석학교
예전엔 밭에 일을 갈 때면 으레 점심을 준비했다. 집에서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국은 밭에서 끓였다. 생선이나 고기를 구울 일이 있으면, 역시 밭에서 나무로 불을 지피고 숯으로 생선이나 고기를 구웠다. 밭에서 먹는 점심은 나름대로 운치와 낭만이 있었다.언제부터인가 집에
나이 서른을 눈앞에 둔 스물아홉은 생뚱맞은 사춘기의 시작이었습니다. 특히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성당을 간다거나 소원을 비는 곳에 가면 항상 똑같은 주문을 외웠습니다. “제발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그리고 여행 갈 때마다 제 여행 가방 속에 들어있는 유일한 책 한 권은
1700년도 초반 경작할 토지를 찾아 목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화전민들은 1800년대 들어서자 관영목장 밖으로 이동해 터를 잡았다. 목장세 부과를 피하려는 의도였다. 10소장 안에서는 목장경작세를 내야 했지만, 10소장 상잣 위 지역으로 이동하면 목장세를 피할 수 있었다
서귀포 오석학교가 12월 30일 상록제를 열었습니다.자원봉사 교사와 만학도 어르신들이 모여 가방고리와 에코백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자원봉사 교사들이 이른 아침 천막과 테이블, 의자, 음향장치, 풍선장식 등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이 맛있는
날씨가 쌀쌀해지면 따뜻한 국물요리가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싸늘해짐 몸과 마음을 데우기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이 최고다. 거기에 김치나 깍두기 한 점 더하면 겨울 음식으론 더할 나위 없다.▲ 돼지족탕 1인분 한 상(사진=장태욱)토평에서 사업하는 벗이 자주 가는 음식
제주의 집을 지키기로 하고, 서울에 가서 짐을 정리해서 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렀습니다. 제주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그럼 예쁜 비옷을 하나 사서 제주에서 입고 다녀야 하겠다’라고 생각했지요. 핑크색의 예쁜 비옷을 들고 제주 집에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비가 옵니다.
19세기 중엽에 만주로 들어가 간도 땅을 개척하는 조선인 수가 크게 증가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영토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화전민이 목장이나 산간으로 이주해 화전을 일구는 시기는, 한반도 북부에서 조선인이 국경을 넘어 만주 땅을 일구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해방 이후 제주도와 외부를 연결하는 뱃길을 1960년대까지 끊겨 있었다. 이후 박정희가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제주도 하늘길과 뱃길이 열렸다. 기선 덕남호(총톤수 280.3톤, 정원 289명)가 1963년 1월 4일 제주항에서 취항해 제주-목포 구간 운항을
▲ 삼춘과 귤을 따는 날은 키라가 제주어를 배우는 날입니다. 일을 하면서 진짜 제주어의 맛을 알게 됐습니다.(사진=키라)2017년 겨울, 주인 삼춘을 따라 처음 귤 따러 갔던 첫날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트럭을 타기 위해 위미우
▲ 치즈돈까스(사진=장태욱)남원읍에 돈까스 전문 음식점이 생겼다는 예기를 몇 달 전에 들었다. 돈까스를 보면 떠오르는 추억도 있고, 아직까지 ‘초딩 입맛’이 남아 있어서 여전히 좋아한다. 귤 수확을 마쳤는데, 날씨마저 추워서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날이다. 점심에 고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