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마주한 두 번의 장례, 그때마다 공동체는 거대한 축제

[발리와 제주사이 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축하하는 발리 장례식

발리 도착했을 무렵, 우붓왕궁 주변에 아주 높은 탑이 만들어지고 있더니 며칠 후 거대한 보라색 황소 조형물이 왕궁 앞에 세워졌습니다. 알고 보니 왕가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월에 돌아가셨는데 4월에 거대한 장례식을 한다고 합니다. 발리의 왕궁 장례식을 볼 수 있는 것은 흔치 않는 기회라고 저에게 운이 상당히 좋은 거라고 합니다.


▲ 우붓지역 사람들이 왕궁 장례식을 위해 만든 보라색 황소(Lembu) 7.5m(사진=키라 이금영)

 ▲ 두달 동안 우붓 지역민들이 9층 25m 화장탑 Bade를 만들었습니다. 왕의 장례식에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사진=키라 이금영)


장례식을 준비하는 두 달 동안 우붓 마을 사람들은 시신을 운반할 탑을 만들고, 시신을 넣고 태울 황소를 만듭니다. 함께 모여 음식도 만들고, 가믈란 음악 연주 연습도 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축제와 같은 왕궁 장례식 준비를 돕습니다. 장례식 당일, 오전 11시부터 왕궁 앞을 지나 화장터로 향하는 장례식을 보기위해 수많은 인파가 우붓왕궁 앞에 모였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햇볕이 무색할 만큼 축제와 같은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특히 발리 장례식은 상당히 특별합니다. 발리 사람들은 죽음과 동시에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거든요. 죽음을 맞이한 영혼이 자연을 만드는 요소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어서 장례식에 슬퍼하거나 우는 사람보다 장례식을 하나의 축제로 받아들입니다. 단지 시신을 태우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의 죽음, 화장 그 이후 재를 바다나 강에 뿌리는 의식절차 중 하나이지만, 발리 장례식은 인간의 몸에서 우주까지 이 세상의 삶을 이루는 우주의 5가지 요소(대지, 물, 빛, 공기, 공간)로 돌아가기 위한 정화의식이랍니다.


▲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치뤄진 까르띠 언니 남편 와얀 장례식. 시신 씻는 장면입니다.(사진=키라 이금영)

▲ 화장터로 이동하는 까르띠 언니 남편 와얀의 상여. 동네 이웃들이 짊어지고 왔습니다.(사진=키라 이금영)


발리 힌두교에는 Tri Rna 이라 부르는 세 가지 빚이 있다고 합니다.
Dewa Rna : 인간과 자연, 이 모든 것을 만든 창조자에게 진 빚
Rsi Rna : 삶의 지도를 베풀어 준 지혜로운 영적 스승들에게 진 빚
Pitra Rna : 우리를 태어나게 하고 기르고 가르쳐 준 부모와 조상에 진 빚

발리 사람들은 이 세 가지 빚을 갚기 위해 매일 그 많은 세리머니를 합니다. 장례식 역시 부모와 조상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한 의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 화장하기위해 시신위에 옷가지를 놓는 장면(사진=키라 이금영)

▲ 몽키 포레스트에서 화장하는 모습. 발리사람들은  시신이 우주의 원소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믿습니다.(사진=키라 이금영)

작년 이맘때, 발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는 까르띠 언니 남편이 새벽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말입니다. 저는 발리 가족들 몰래 발리 행 비행기를 끊어 발리로 떠났습니다. 가족들은 장례식 준비에 다들 정신이 없었지요. 갑자기 한국에 있어야 할 키라가 발리 집에 나타난 순간 다들 눈물바다가 되었답니다. 아무리 힌두문화가 장례를 축제처럼 치른다고 한들, 한 인간의 죽음이 어찌 슬프지 않겠어요? 장례식 당일 시신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까르띠 언니가 와얀에게 인사할래? 라고 물어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태어나서 죽은 이의 얼굴을 처음 봤습니다. 아주 곤히 깊은 잠에 든 것처럼 편안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조금 있다가 와얀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와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술사의 주문 아래 시신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혀 상여에 태워 몽키 포레스트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발리에서는 좋은 날을 받아서 같은 날 다른 이의 장례와 함께 화장을 치룹니다. 화장터에 도착해 순서에 따라 화장을 합니다. 화장할 와얀 시신 위에 와얀의 옷가지들도 올리고, 불을 붙입니다. 그 어느 누구하나 우는 사람 없이 조용히 묵묵히 와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봅니다. 화장이 끝나고 남은 뼛가루는 우붓 짬뿌한 강에 뿌려졌습니다. 와얀이 다시 자연으로 우주의 일부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화장터에서 참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인간의 삶이 고작 이 한줌의 잿가루밖에 안되었나 하는 생각과 죽음은 삶의 마지막이고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의 끝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시작이었구나.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이 끝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임을. 그래서 다시 우주의 그 무엇이 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미리 축하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던 발리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2022년 봄부터 2024년 4월 현재 발리에서
제주와 발리를 오가며,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
그 경계에 하우스노마드로 살고 있습니다.
2023년까지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운영,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블로그<하우스노마드 키라>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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