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와 마을행사는 발리인의 일상, 제주도 '괸당'인줄

[발리와 제주사이 ③] 반자르 공동체에 둘러싸인 발리사람들

처음 제주에 살면서 놀랬던 것 중 하나가 ‘괸당문화’였습니다. 제주 현지인과 함께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 죄다 친인척 아니면 친구, 사돈의 팔촌입니다. 그래서 제주에서 국회의원 나가려면 괸‘당’이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은 적이 있답니다.


▲ 집에서 열린 장례식에 이웃이 참석해 조문하는 장면이다. 제주도사람처럼 발리사람에게도 경조사는 일상이다.(사진=키라 이금영)


제주에 살면서 제가 가장 덕을 많이 받았던 게 고마운 제주사람들의 괸당과 그의 친구들이었답니다. 집에 수도가 고장났을 때도, 전기가 고장났을 때도, 육지 가족들에게 보낼 꿀을 구입할 때도 제주 지인들의 괸당 덕을 톡톡히 보며 살았거든요. 이사한 집에 수도계량기가 없어서 읍사무소에 연락을 했더니, 수도담당자가 연차 휴가중이서 3-4일후에 처리해줄 수 있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저는 바로 고마운 제주사람1에게 전화를 했지요. 혹시 읍사무소에 수도 관련 아는 분이 있냐고요. 잠시만 하더니 곧장 전화가 왔습니다. 수도 담당자가 친구인데 귤밭에 일하려고 연차를 썼다면서요, “오후에 키라집에 가서 수도계량기 달아줄 거야.” 하하하, 이게 바로 제주 괸당의 힘입니다.

그렇다면, 발리는 어떨까요?
하루 중 발리 사람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꼬마나?”(어디가?)입니다.
이때 제 대답은 “잘란잘란”(산책간다 또는 그냥 걷는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티하티”(조심조심 다녀와)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 거리에서 만나 오래 인사하는 이웃(사진=키라 이금영)

발리도 제주 못지않게 발리 가족 중 한 명과 밖에 나가면 전부 친인척에 사돈의 팔촌입니다. 누구야? 패밀리. 누구야? 친구. 그래서 발리에서도 나쁜 짓하면 안 됩니다.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CCTV가 무수히 많거든요. 제가 집에 돌아오면 키라 밥 먹었어? 오늘도 나시고랭 먹었어? 썬썬와룽 갔어? 우리 식구들은 키라가 오늘 어디서 뭘 먹었는지 다 알고 있답니다.

제가 사는 제주 남원읍에 거주하는 제주 현지인들을 보면 모임이 정말 많습니다. 초등학교 동창회, 중학교 동창회는 기본이고요, 각종 개인적인 모임들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제주에서 남원이 가장 모임이 많을 거라 했습니다. 개인적인 모임도 꽤 많지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그들이 사는 마을에 있는 리사무소가 아닐까 합니다. 리사무소를 통해 마을의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발리에도 ‘반자르’라고 하는 우리나라 행정구역 ‘리’에 해당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반자르를 통해 마을의 사원, 마을 행사, 마을 청소뿐 아니라 장례식도 함께 도와가며 진행합니다. 그리고 제주에 있는 집성촌처럼, 발리도 친족들이 같은 반자르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제 키라네 발리 가족들도 4월초에 있을 마을 세리머니를 준비하기위해 차낭 만들러 다들 템플로 출동했답니다. 그래서인지 요 며칠은 동네 곳곳에 문 닫은 가게가 많습니다.


▲ 제주도에서 이웃의 지인이 휴일에도 수도 계량기를 고치러 와주었다. 제주도에선 이웃의 도움이 있어서 편하게 살 수 있었다.(키라 이금영)

이렇게 전달하면 쉬울까요? 제주도 현지인 식당에 가면 평일인데 식당 문을 닫은 경우가 종종 있지요. 육지에서 온 손님은 황당하지요. 왜 갑자기 문을 닫은 거지? 잔치나 상이 난 곳에 도움을 주러 간 경우가 있는 것처럼 여기 발리도 마찬가지랍니다. 빨래 찾으러 갔는데 빨래방이 문을 닫았어요. 이런 경우 대부분이 집에 제사거나 마을 행사를 위해 참여하러 간 거랍니다.

제가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제주 현지인들과 함께 사는 마을은 안전하다는 겁니다. 제게 여자 혼자 제주에 살면 위험하지 않냐? 무섭지 않냐? 라고 물어보는데요. 저도 처음엔 정말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무조건 집으로 돌아왔지요. 가끔 뉴스에 나오는 문제의 사건사고들이 현지인들이 주로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외부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제주에서 일어난다는 것을요.

발리도 똑같습니다. 발리 길거리에 구걸하거나 이곳에서 사건사고의 제공자는 발리사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끔 키라네 발리 언니와 함께 길을 걸으면 ‘저 사람 발리 사람 아니야.’ 라는 말을 꼭 하곤 합니다. ‘발리 사람들은 저렇게 행동하지 않아’ 라고 말입니다.


▲ 사원에서 제사를 올리기 위해 가족이 함께 준비하는 장면(사진=키라 이금영)

발리든 제주든 혈연, 친족 중심의 함께 나누고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입니다.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조건과 척박한 환경, 외부로부터 위협적인 일들로 인해 아픔을 간직하고도 이겨내기 위해 그들은 함께 도우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방법을 찾아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그들이 만든 공동체로부터 그들만의 전통을 지키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통해 만들어진 문화가 제주를 제주답게, 발리를 발리답게 가꾸고 만들어왔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문화를 존중해줬으면 합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2022년 봄부터 2024년 3월 현재 발리에서
제주와 발리를 오가며,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
그 경계에 하우스노마드로 살고 있습니다.
2023년까지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운영,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블로그 <하우스노마드 키라>에서 발췌된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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