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바리' 채소와 과일, 발리에선 날마다 새벽시장

[발리와 제주사이 ④] 계절을 파는 제주도 오일장, 자연을 파는 발리 새벽시장

제주에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계절을 먹는 일입니다. 삼춘들 각자가 가진 우영팟에는 그 계절에 맞게 다양한 먹거리가 자라고 있지요. 우영팟에서 쑥쑥 올라오는 부추를 뜯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제주 향토 오일장 가는 일입니다.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시장 구경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요. 텃밭 모종이라도 나오는 철이면, 다 심지도 못할 거면서 모종을 한가득 사오기도 했답니다.


▲ 새벽시장 코코넛 상인(사진=키라 이금영)

그리고 제가 오일장에서 꼭 사는 채소가 있습니다. 마늘, 양파, 감자는 반드시 표선오일장 양파 파는 삼춘네에서 사온답니다. 마트에서 사는 양파는 며칠만 지나도 금방 썩기 시작하는데, 오일장에서 사온 제주양파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썩지 않거든요.

  제주의 계절을 파는 곳, 향토오일장

톳이 나오는 계절에는 톳을 사고, 우미의 계절에는 우미를 꼭 사곤 합니다. 지금 제주의 이 계절을 가득 담은 신선한 식재료이니까요. 그리고 향토오일장의 피날레는 당연 꽈배기죠. 꽈배기 하나 입에 물면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입니다.


▲ 키라가 자주 갔던 표선오일장 양파 가게(사진=키라 이금영)

그렇다면, 발리에서는 뭘 먹고 살고 있냐고요? 발리에서는 발리의 자연을 먹고 삽니다. 제주의 계절을 파는 곳이 향토오일장이라면, 발리의 자연을 파는 곳은 발리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새벽시장입니다. 수많은 발리 사람들이 새벽에 장을 봅니다. 아침 6시쯤 되면 키라네 발리 가족들도 오늘 먹을 음식을 위해 장을 보러 새벽시장에 갑니다. 매일매일 갑니다. 그날 먹을 식재료는 그날 아침, 새벽시장에서 사옵니다. 정말 딱 그날 하루 먹을 양 만큼만 사옵니다. 우리처럼 남은 음식을 저장해 놓고 먹지 않는답니다. 요리도 하루에 딱 한번, 아침에만 합니다. 아침에 그날 하루에 먹을 음식을 3가지 정도 준비해놓습니다. 즉, 하루 세끼를 거의 같은 반찬에 밥을 먹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저녁이나 점심을 포장해 와서 사먹기도 하고, 새벽시장에서 반찬을 포장해오기도 합니다.


▲발리 새벽시장에 가면 '당일바리' 채소가 가득합니다.(사진=키라 이금영)  
       

  발리의 자연을 파는 곳, 로컬 새벽시장
  
오늘은 저도 까르띠 언니를 따라 새벽시장에 갑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시장 구경은 늘 즐겁습니다. 모양이 구불구불 제멋대로인 가지, 크고 작고 울퉁불퉁 작은 고추들, 줄기째 따온 바나나 한 뭉치, 우리나라와는 다른 동글동글한 작은 수박,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지만 여기선 너무나 흔한 아보카도와 망고스틴, 갓 따온 싱싱한 채소와 과일들. 제주식 표현대로라면 당일바리 채소, 과일 가득입니다. 발리의 뜨거운 태양을 꼭꼭 눌러 담은 자연 그대로, 날것 그대로입니다. 발리의 화려한 색깔들처럼 과일이나 야채 또한 알록달록 다채롭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지는 자줏빛인 줄 알았는데 새하얀 가지를 보고 놀라고, 노란 옥수수에 익숙한 저에게 블랙 옥수수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망고는 당연히 노란색인 줄 알았는데, 흰색 망고도 있다는 사실. 지금은 한국에도 있지만, 노란 수박을 처음 본 게 10년 전, 발리에서였습니다. “어머, 세상에 수박이 노란색이야!”


▲ 아보카도. 발리에선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습니다.(사진=키라 이금영)


▲ 발리 새벽시장에서 바나나 파는 가게(사진=키라 이금영)

가끔은 혼자 아침에 이 새벽시장에 갑니다. 하루 종일 관광객들이 가득한 이곳 발리에서 이 새벽 시장 만큼은 온전히 그들만의 시간이자 공간이거든요.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 경계인의 위치에서 새벽시장을 메우고 있는 시장 공기의 온도, 시장의 냄새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답니다. 그들이 무엇을 먹는지, 오늘은 자연에서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시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저만의 방법이랍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제주에서는 계절을 먹고 계절에 살고, 발리에서는 자연을 먹고 자연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제주에 있으면 발리의 자연이 먹고 싶고, 발리에 있으면 제주의 계절이 먹고 싶어진답니다. 지금 제주는 고사리가 한창이겠죠? 제주에 가면 제일 먼저 고사리를 먹어야겠습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2022년 봄부터 2024년 3월 현재 발리에서
제주와 발리를 오가며,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
그 경계에 하우스노마드로 살고 있습니다.
2023년까지 음식 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운영,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블로그 「하우스노마드 키라」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라 이금영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