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시인 정지용, 오사카 가는 제주도사람과 무슨 얘기?

[교토-오사카 여행기] ⑤ 정지용의 일본 유학 시절과 가모강

정지용 시인은 100년 전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이 처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선택된 엘리트였다. 그럼에도 그는 조국강산에 대한 애정, 국토와 함께 몸부림치는 민초의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전국 지방을 두루 다니며 지역민과 교류하고 그들의 삶과 토착 문화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 내가 특별히 정지용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는 1902년, 충청도 옥천면에서 태어났다. 옥천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휘문고보 재학 시절 3.1운동을 맞아서는 반일 수업을 요구하다 정학을 맞기도 했다. 가까스로 학교를 졸업했고, 스물한 살 되던 1923년에 교토 도시샤 대학에 입학했다.


▲ 도시샤 대학(사진=장태욱)

시인이 진학을 위해 일본으로 가는 길에, 배 위에서 느꼈을 쓸쓸한 서정을 엿볼 수 있는 시가 있다.

외진 곳 지날 제 기적은 무서워서 운다./ 당나귀처럼 처량하구나.
해협의 칠월 해ㅅ살은/ 달빛보담 시원타.
화통 옆 사닥다리에 나란히/ 제주도 사투리하는 이와 아주 친했다.
스물 한 살 적 첫 항로에/ 연애보담 담배를 먼저 배웠다.

 -‘다시 해협(海峽)’의 일부

‘다시 해협(海峽)’은 시인이 처음으로 배를 탔던 시절을 추억하며 쓴 시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오사카로 가던 식민지 청년의 쓸쓸함이 작품에 묻어난다.

부산과 오사카를 연결하는 항로는 수백 년 간 한·일 양국을 이어온 뱃길이었다. 부산을 출발한 배는 시모노세키 주변의 ‘간몬해협((関門海峽)’을 지나야 한다. 시인이 시의 주제로 삼은 해협은 간몬해협이었을 것이다.

그 좁은 해협을 지날 때 배는 고동을 크게 울렸고, 비로소 자신이 일본에 왔음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 배를 타고 낯선 곳으로 가는 이에게 두렵고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7월의 밝고 뜨거운 햇살 아래 두려움을 홀로 감당하지 못한 시인은 동승한 승객과 친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게 공교롭게도 제주도사람이었다.

당시는 일본 오사카가 신흥 공업도시로 성장하고 있었고, 제주도에서 많은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오사카를 드나들었다. 시인은 제주도사람과 친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그래도 그 쓸쓸함을 이기지 못했는지 담배를 꺼내 피웠다. 두 사람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 정지용의 시비에는 작품 ‘압천(鴨川)’이 새겨졌다. 압천은 도시댜 대학 인근을 지나는 가모강을 말한다.(사진=장태욱)

도시샤 대학에 세워진 정지용 시비에는 그의 작품 ‘압천(鴨川)’의 전문이 새겨졌다. 압천은 도시샤 대학 주변을 흐르는 강의 이름(일본식으로 ‘가모가와’)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정지용도 이 강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유학 초기에 쓸쓸함과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가모강가를 찾았는데, 그때 쓴 작품이 남아있다.

椿나무 꽃 피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 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 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 조름조는 마을길에 고달퍼/ 아름 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홍춘(紅椿)’ 전문

椿(춘, 일본어로는 '쓰바키')은 일본에서 동백을 이르는 단어이니, 홍춘(紅椿)이란 ‘붉은 동백’이다. 시인은 이 작품을 발표할 때, '1924년 4월 가모강 상류에서' 썼다고 창작 장소와 시점까지 남겼다.


▲ 가모강. 교토사람들이 사랑하는 강인데, 정지용은 이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시를 썼다.(사진=장태욱)

1924년 봄에 가모강을 찾았는데, 동백이 피처럼 붉은 빛을 발한다. 날이 저물도록 물레방아는 부지런히 돌아가고 아이들과 병아리가 철없이 놀고 있다. 자신의 고향을 떠올릴만한 풍경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익숙해질 텐데, 아직은 어색함에 자신의 볼만 만지고 돌아온다.

시인은 특별히 동백꽃을 사랑했다. 충청도 내륙 출신이어서 고향에서는 동백꽃을 본 적이 없을 텐데, 일본에서 겨울에 붉게 피는 꽃을 보면서 적이 신기했을 것이다. 그는 유학을 끝낸 뒤 김영랑, 김현구와 남해안을 여행하면서도 동백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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