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장터’에선 단호박 한 망이 5천원, 여기만 있는 가격
[장보기] 한림민속오일시장
여름 막바지까지 더위가 기세를 꺾지 않는다. 움직이면 금새 몸에서 땀이 흐르고, 몸에서 기운이 빠진다. 그늘이 있는 숲이나, 시원한 물가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이런 더위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에어컨 시설도 없고, 기껏해야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를 달래야 하는데, 사람들 얼굴에 밝은 색이 떠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제철 농산물로, 갓 잡은 수산물로 손님을 반기는 곳, 오일장이다.

제주시 한림읍 대림사거리 인근에 4일, 9일마다 한림민속오일시장이 선다. 한림오일시장이 언제 처음 열렸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1956년 2월 24일에 협재리 오일시장이 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한림민속오일시장이 협재리 오일시장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제주도에 재래시장은 대부분 1950년 이후에 활성화됐다. 이전에 자급자족 시대엔 사고 팔만한 물건이 많지 않았을 것인데,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대거 제주도로 유입되면서 시장이 활기를 띠었다. 협재리 오일시장은 제주도내에선 매우 초창기에 개장한 오일시장이다.

29일 오후 2식 경에 한림민속오일시장을 찾았다. 시장에 들어서는데, 도청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시장 상인과 손님에게 500밀리리터 생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주민들이 일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너무 더우면 물도 마시고 쉬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점포가 약 160개가 된다고 하니, 작은 규모의 시장은 아니다. 한림읍의 인구가 2만 명이 넘고, 인근 애월읍이나 한경면에 오일장이 서지 않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시장을 둘러보는데 어물전 규모에 처음 놀랐다. 생선을 파는 상점만 20개가 넘어 보이는데, 오징어, 갈치 등 싱싱한 수산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림항이 질 좋은 수산물을 자랑하는 곳인데, 그 영향 때문인지 한림민속오일시장의 어물전도 활기를 띤다.

다음 놀란 점은 ‘할망장터’다. 인근에 사는 어르신들이 농산물을 파는 점포인데, 10명 넘는 삼촌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가지, 오시, 단호박, 호박잎, 감자, 당근, 양파 등 제주도 서부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좌판에 널려 있었다.
팔순은 넘어 보이는 삼촌은 “한림리에 사는데, 장이 설 때마다 나온다.”라며 “할망장터에서 물건이 잘 팔린다.”라고 말했다. 큼직한 가지 6개 한소쿠리에 5,000원, 단호박 6개 한 망이 5,000원, 이건 오일장에서밖에 만날 수 없는 가격이다. 단호박 한 망을 사고 왔다.

할망장터 옆에 ‘옥자네’라는 점포가 있는데, 채소의 씨앗과 모종을 판다. 역시 팔순은 되어보니는 사장님인데, 옥자는 사장님 이름이라고 했다. 옥자네 사장님은 “요즘 사람들이 채소를 직접 기르지 않고 사다가 먹기 때문에 갈수록 씨앗과 모종이 덜 팔린다.”라고 했다. 조금 있으면 가을 채소를 심는 시기라, 총각무 씨앗을 사고 왔다.
예상치 않게 반가운 사장님을 만났다. ‘형제그릇’ 한옥선 사장님, 중국 조선족 출신인데 제주도로 시집을 온 분이다. 악착같이 장사를 해서 경제적으로 기반을 다졌다. 젊어서는 다문화가정을 돕는 일에도 많이 나섰는데, 지금은 많이 지쳐서 장사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일에는 여전히 적극적이다. 애월읍 상귀리에서 마을 부녀회장을 지냈고, 하귀농협 고향주부모임 활동에도 참여한다. 마땅히 살 게 떠오르지 않아 빨래집게와 운동화 솔을 사고 왔다.
오일시장에 갈 때마다 대장간이 있으면 반갑다. 한림민속오일시장엔 ‘원일대장간’이 있어서 사장님과 인사를 나눴다. 20년 전에 제주도로 와서 지금까지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호미나 낫, 칼을 직접 제작하는데, 주변에 남는 고철을 두드려서 쓴다고 했다.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도 있고, 칼을 갈아달라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만을 표하지 않고 그라인더로 칼을 갈아주는 모습을 보니, 단골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벌초를 해야 할 시기라, 낫 하나를 사고 왔다. 1만2,000원인데 날이 잘 들 것처럼 보였다.

시장에선 오고가는 사람들, 상인들이 여전히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다. 더위, 시장 안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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