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시인 정지용을 품은 도시, 오랜 염원 이뤘다
[교토-오사카 여행기] ① 하루카, 간사이공항에서 교토 가는 길
일본 교토, 일본인들에겐 천년 수도인데, 시인 정지용과 윤동주를 길러낸 도시다. 도시에 배긴 오래된 흔적을 더듬는 일는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그 오랜 염원이 딸을 통해 이뤄졌다.
3월 중순에 딸이 회사에서 안식월을 받았다. 워낙에 여행을 좋아하는 아이라, 한 달 안에 해외여행만 세 번 간다고 했다. 두 번은 친구와, 한 번은 부모와 가겠단다.
아들을 제외하고 셋이서 일본 교토와 오사카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멀지도 않고, 제주공항에서 간사이공항을 가는 직항이 있어서 부담 없는 여정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수많은 한국인의 체취가 배인 땅이라 오래 전부터 구상하던 여정인데, 비로소 이뤄졌다.
4월 12일, 늦은 오후 제주공항을 출발해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날 저녁 전국에 강풍이 예보됐던 터라, 비행기는 이륙 후 적잖이 흔들렸다. 하늘로 한참을 오르고서야 안정을 되찾았고, 두 시간 가까이 비행하니 오사카만 위로 간사이공항과 연락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행기가 착륙한 후 한참을 기다려서야 입국심사를 끝낼 수 있었다. 딸이 예약한 대로 교토시까지 기차를 타기로 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교토시로 가는 기차의 이름은 ‘하루카’다. 기차에 꽃그림을 그려놓아,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객들에게는 하나의 볼거리다.

기차는 여행자와 거주민이 만나는 공간이다. 연인의 어깨에 기댄 여인,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 여행의 설렘에 취해 쉼 없이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의 체온이 기차 안에 뒤섞인다. 그리고 창 밖에선 나지막한 건물과 좁은 골목, 소상인의 간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펼쳐지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우리들의 기차(汽車)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덕어리며 지나 간 단 다.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 차창(車窓)에 기댄 대로 희파람이나 날리쟈.
정지용 시인이 1927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정 시인은 1923년에 교토시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해 1929년에 졸업했으니, 유학 중에 발표한 작품이다. 충청도 옥천 시골에서 일본 교토로 유학한 식민지 청년이 슬프다고 말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기차를 타면 차 안에 가득 찬 사람 냄새, 창밖의 농촌 풍경에 마음이 가벼워진 모양이다.

하루카 안에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쓰는 여행자도 많았다. 두 시간 가까운 비행과 입국심사를 거쳤던 터라, 기차에 오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100년 전 시인처럼, 마음은 기차 안에서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루카에 몸을 싣고서야 진짜 일본 여행이 시작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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