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달’네 럭키슈퍼가 있는 오조리, 왜 좋은 일만 생길까?

성산읍 오조리, 습지보전지역-드라마 촬영지-농산어촌개발사업 거치며 명품 마을로 부상

제주도에서도 해가 가장 일찍 돋는 성산읍 오조리, 성산의 드넓은 내해수면과 해발 66m의 야트막한 식산봉을 품은 마을이다. 용천수가 솟고, 바닷물이 들어와 형성된 습지가 마을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 논물, 족지물, 엉물, 친모살물, 재성물, 얼피물, 새통물 등 용천수와 습지의 이름을 다 기억하는 게 어려울 지경이다.

오조리 연안습지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철새도래지가 있는 성산 내해수면이다. 오조포구가 내해수면에 있고, 마을 소득증대사업으로 건설된 오조리 양식장도 그 안에 있다. 특히, 오조리 양식장은 현대사에 특별한 기록으로 남은 곳이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이 의장이 양어장 건설을 위해 하사금 20만원을 보냈고, 주민 연인원 2500명이 건설에 동원됐다고 한다. 마을회관 로비에는 1963년에 오조리 주민들이 양어장을 건립하는 현장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농사에 불리한 연안습지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려고 힘을 모았던 경험이 마을의 저력으로 남아있다.


▲ 오조리 양어장. 오조리는 돌과 슾지가 많아 생활여건이 불리했는데, 주민들은 1961년부터 소득을 높이기 위해 내해수면에 양어장을 조성했다. (사진=장태욱)

습지를 활용하려는 주민의 노력은 이후에도 이어진다. 대표적인 게 오조리 연안습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려는 노력이다. 마을회는 오조리가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오리류가 겨울에 월동하고 도요새, 물떼새 등이 월동하는 구역으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연안습지로 지정할 경우, 일출봉 자연유산과 연계하면 생태관광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주민들은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위해 시민단체와 함께 워크숍도 열었고, 2023년에는 제주자치도가 시행하는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시험사업에도 참여했다. 주민들은 식산봉과 주변 연안습지, 논물 생태연못 주변을 정화하고 환경 훼손을 감시하는 일을 하면서 보물 같은 환경을 지켰다.

그런 노력은 정부의 마음을 움직였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12월, 오조리 내수면 연안습지 0.24㎢의 면적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제주도 연안습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오조리가 처음이었다.

당시 제주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통해 "오조리 연안습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오조리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연안습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전하기 위해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요청하는 등 상당한 보전 노력 때문"이라고 밝혔다.


▲ 습지는 사람의 생활에는 불리하지만, 철새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주민들은 연안습지를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지난해 해양수산부의 결정을 이끌어냈다.(사진=장태욱)

대부분의 마을이 개발에만 관심을 기울일 때 오조리가 환경단체와 함께 습지보전지역 지정을 위해 노력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경우 개발에 제동이 걸리고, 재산권도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의 논평에는 주민들의 이런 결정과 노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를 통해 마을이 다시 한 번 관심을 끌었다. 오조포구가 드라마에 배경으로 나오는데, 특히 포구 주변 빈 창고가 ‘럭키슈퍼’ 촬영지로 활용됐다. 물론 이 공간이 이렇게 촬영지로 선택된 건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주민들이 오조포구와 양어장 등 연안습지를 잘 가꾸고 보존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럭키슈퍼’ 촬영지는 여행객들 사이에 명소로 알려져, 여행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교통 혼잡을 예방하기 위해 승용차 출입을 통제해야 할 정도다.

그리고 5월 31일, 오조리에 다시 낭보가 전해졌다. 행양수산부는 서귀포 오조권역이 ‘2025년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신규 대상지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서 럭키슈퍼로 활영됐던 창고(사진=장태욱)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은 어촌의 소득·기초생활 수준 향상을 위해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해 마을의 생활기반시설, 수익시설 등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주민 참여형 사업이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2월부터 공모를 진행하고 서류 및 현장평가를 진행했다.

5월 21일에는 해수부 평가단이 사업계획과 준비상황 등을 점검하기 위해 오조리를 방문했다. 해수부 심사위원들이 오조리 마을회관 회의실에 모인 상황에서 고기봉 이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오조권역 행복한 삶터 조성사업 예비계획’을 발표했다.

고기봉 이장은 이 자리에서 “오조리는 우수한 천혜의 자연경관과 아기자기한 돌담길을 갖춘 마을”이라고 말한 뒤 “최근 드라마의 주요 촬영지로 각광을 받으며 지역 홍보에도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자랑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 해수부 평가단 앞에서 고기봉 이장이 발표하는 장면(사진=장태욱)

‘오조권역 행복한 삶터 조성 사업’은 주민이 주도적으로 생활 거점공간 안에 보육, 문화, 복지, 체육 서비스시설을 확충하고, 연안습지 등 마을 자산과 연계한 정주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수부는 전국 사업 공모지 평가를 마무리한 후 5월 31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고기봉 이장이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표한 지 열흘만이다. 2025년 신규 대상지로 경북 포항 호미곶권역을 포함해 전국 9개 사업지가 선정됐는데, 거기에 제주 서귀포 오조권역도 포함됐다.

이번 결정으로 오조리에는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국비 55억 원과 지방비 23억6300만원 등 총사업비 78억6300만 원이 투입된다.


▲ 식산봉과 내해수면(사진=장태욱)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던 2015년 11월, 정부는 성산읍에 제주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발표 이후 도민사회는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고 제2공항 사업은 그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사이 성산읍은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여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당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진다. 성산읍은 오히려 침체의 늪에 놓였고, 주민들은 제2공항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그런 가운데 오조리는 홀로 마을 생태자산을 활용해 마을의 활력을 도모하고 있다. 드물게 주민의 노력으로 습지보전지역 지정도 이뤄냈고,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정부 공모에도 선정돼 생활환경 개선도 이룰 수 있게 됐다. 이제 성산읍은 제2공항이 아니라 오조리로 빛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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