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히라노강과 공원의 돌하르방, 제주인의 눈물 서려있다

[교토-오사카 여행기] ⑥ 오사카 이쿠노구 가는 길

교토에서 도시샤 대학과 인근 가모강을 둘러보고 오후에 오사카행 기차를 탔다. 기차가 오사카에 도착하고 숙소에 짐을 풀었더니 저녁이 되었다.

전체 여행 동선을 짠 딸이 이끄는 대로 오사카 최대 번화가라는 도톤보리로 갔다. 도톤보리 강변 글리코상은 여행객에게 필수 포토존이라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사진을 찍기 위해 인파가 운집해 있으니, 이런 게 유행이라고 생각했다.


▲ 오사카 도톤보리 강 주변 상가에는 밤에도 많은 인파가 몰린다.(사진=장태욱)

그리고 난바-신사이바시, 중국 상하이 중심가에 버금갈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밤인데도 상가 거리는 걸을 수 없을 만큼 번잡하다. 사람 구경, 간판 구경, 상품 구경 하면서 뒷골목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한문으로 ‘영화정(榮華亭)이라는 간판이 걸렸는데, 한국인에게 꽤나 유명한 야키니쿠(불고기) 전문점이라고 했다. 옆에는 두 가족이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모두 한국 여행객이었다. 음식이 무제한 제공되는데, 1인분에 3,200엔, 3,900엔, 5,000엔 등 세 등급으로 분류된다. 가격이 높을수록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이 다양하다. 3,900엔 옵션을 선택하고 고기를 구워먹었다. 불고기 굽는 냄새가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했다. 일본에서 오랜만에 고기를 배부르게 먹었다.


▲ 야키니쿠 전문점에서 배부르게 먹었다.(사진=장태욱)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왔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아케이드 상가를 걸어서 정류소로 갔고, 그길로 숙소로 돌아왔다.

교토에서처럼 오사카에서도 비 맞은 이튿날은 날이 활짝 개었다. 버스를 타고 이쿠노구(生野區)로 갔다. 거기에 조선인들, 특히 제주출신 조선인들이 모여 산다. 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니, 간밤에 봤던 번잡한 상업지구와는 다르게 한적하고 소박한 교외지역이 나타났다.

이쿠노구에서 버스에서 내려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으로 가는 도중에 교회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는데, 주변 다른 건물에 비해 높은 건물이다. 교회 이름에서, 여기가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걸 몸소 느꼈다.


▲ 오사카 히라노강. 과거 이 일대에 새롭게 시가지를 조성하는 공사에 수많은 조선인이 동원됐다.(사진=장태욱)

그리고 좁은 강을 지났다. 히라노강(平野川)인데 조선인의 애환이 묻어 있다. 지금 이쿠노구라는 구역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히가시나리군(東成郡)에 속했는데, 1925년에 도시의 구역이 확대되면서 오사카시에 편입됐다. 이 지역에 시가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히라노강 개수공사를 시행했는데, 거기에 조선인 약 2,000명이 동원됐다. 당시 조선인들이 고생한 결과로 수로가 반듯하게 정비됐고, 일대에 면직물공장, 비누공장, 고무공장 등이 들어섰다. 이곳에 들어선 공장들은 노동력이 필요해졌는데, 수많은 제주도사람이 공장에 취업하기 위해 오사카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주변에 어린이 놀이터와 비슷한 작은 공원이 있는데, 미유키모리다이니공원(御幸森第2公園)이다. 거기에 돌하르방 두 기가 서 있다. 제주도에선 자주 보던 것인데, 일본에서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지난해 표석에 제주자치도가 제주-오사카 직항로 개설 100주년을 기념해 기증한 것이라는 내용이 새겨졌다.


▲ 공원에 돌하르방 한 쌍이 세워져 있다.(사진=장태욱)

공원 바로 옆에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이 있다. 아담한 1층 단독건물이데,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료관인 만큼 자료에 욕심을 내고 갔는데, 수많은 자료가 모두 일본어로 기록됐다. 책이나 사진, 신문 들이 많이 있는데, 모두 일본어 기록이라 이해할 수 없다. 재일 조선인에 대한 책이 많은데, 제목만 겨우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포기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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