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절차도 무시한 지목변경, 일가족 빚의 수렁에 빠졌다
[탐사-D씨의 행정소송 ②] 멀쩡한 도로 잡종지로 만든 서귀포시청
앞서 소개한 대로 D씨의 시름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2019년 보낸 공문 한 장으로 인해 깊어졌다. D씨가 진입로로 확보한 도로 일부분(국유지)인 표선면 ▲-1번지 도로가 대지로 변경됐다며, D씨가 대지 아래에 매설한 우수관과 전선 등을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공문 한 장으로 공사는 중단되고 D씨 가족의 삶은 한순간에 수렁으로 빠졌다.
“내가 사고를 당한 후로 일을 못합니다. 아내와 딸이 야시장에서 물건을 팔면 그걸로 가족이 근근이 생활했습니다.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건축비를 빌렸는데, 2019년 이후 건축이 중단되면서, 이자만 쌓여가는 실정입니다.”
D씨는 기자에게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은행에서 돈을 빌린 지 5년이 다 됐기 때문에, 은행을 찾아 대출 연장을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그사이 은행이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을 대폭 낮춰서, 대출이 연장될 지도 걱정이다. 공사가 일찍 마무리됐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충이다.
D씨는 그동안 상식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동분서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모르는 새,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그 가운데 자신의 땅 주변 도로의 지목이 대지로 변경된 두 건의 행정조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 표선리 ★-8번지(도로)의 지목 변경
이 토지는 주변 농지의 소유주 S씨의 소유인데, 그동안 도로로 활용되던 토지다. 도로이므로 당연히 행정자산에 속한다.
서귀포시가 D씨에게 보낸 공문에 따르면, 이 토지의 일부는 지난 2007년 소유주 S씨에 의해 도로에서 잡종지로 지목이 변경됐다. 그리고 인접한 S씨 소유의 ★-5번지(잡종지)와 합병됐다. 합병에서 제외된 나머지 도로는 분할되어 새로운 지번(표선리 ★-11번지)을 부여받았다.
도로의 일부가 잡종지가 되어 인근 토지와 합병된 이후에도 토지 경계 등은 10년 넘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토지주 S씨는 지난 2018년에, 토지 합병에 따라 새롭게 형성된 경계를 따라 돌담을 다시 쌓았다.
토지 합병으로 주변 도로의 폭은 좁아졌고, 도로 경계선이 남쪽으로 후퇴했다. 그 바람에 자산관리공사가 표선리 ▲-1번지 토지가 도로기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 표선리 ▲-1번지(도로)의 지목 변경
이 땅은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듯,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요청으로 서귀포시가 지난 2019년 6월에 도로에서 대지로 지목을 변경했다. 기획재정부로부터 국유재산 관리를 수탁한 한국자산관리공사는 공문을 통해 해당 도로 24㎡의 지목을 대지로 변경해달라고 서귀포시에 요청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토지의 지목 변경을 요청하면서 그 근거로 국유재산법 제14조를 들었다.
국유재산법 제14조(등기ㆍ등록 등) 제3항은 ‘중앙관서의 장 등은 국유재산이 지적공부와 일치하지 아니하는 경우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록전환, 분할ㆍ합병 또는 지목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됐다.
D씨는 수차례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서귀포시청을 찾아 이 같은 조치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두 기관은 자신들이 정당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서귀포시는 책임이 없고 서귀포시는 오로지 자산관리공사가 요청한 대로 행정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서귀포시청의 이 같은 행위가 정말로 타당했을까?
국유재산은 국가가 행정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의미하는데, 크게는 행정재산과 일반재산으로 분류된다. 행정재산은 사용목적이 뚜렷해 매매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재산이고, 일반재산은 국가가 장래 행정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비축하거나, 재정수입을 위해 제공하는 재산이다.
국유지 도로는 행정재산인데, 구체적으로는 공공용 재산에 해당한다. D씨가 문제로 삼은 건은 서귀포시가 공공용 재산에 해당하는 도로를 일반재산으로 변경한 일인데, 매우 이례적이다. 제주도내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K씨는 “내가 도로를 대지로 변경했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다.”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식적으로 도로나 항만, 공항 활주로 같은 재산이 어느 날 갑자기 일반재산으로 바뀌고, 자동차, 비행기나 배의 출입이 제한된다면 큰 혼란이 빚어질 건 자명하다. 그래서 법령은 국유재산의 용도를 폐지하는 일에 대해 기준과 지침을 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021년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국유재산 용도폐지에 관한 지침’ 제9조(이해관계인 권리보호 등)는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중앙관서의 장은 용도폐지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이해관계인의 권리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이해관계인에게 통지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즉, 도로의 용도를 폐지했을 때 피해를 입을 시민이 존재한다면, 그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미다.
D씨 행정소송을 대리하는 C변호사는 ‘행정목적으로 사용되지 아니하게 된 경우라 할지도 용도를 폐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행정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도로에 대해 용도폐지를 하지 않고 지목만 변경한 행정행위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근 표선리 ★-8번지(도로)와 ★-5번지(잡종지)를 합병한 것에 대해서도 ‘토지개발행위와 농지전용 절차 등 법적근거 서류 제출도 없이 도로가 잡종지로 지목이 변경되고 합병신청이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D씨는 지난 2022년 10월 서귀포시장을 상대로 행정재산 용도폐지 처분이 무효라는 취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초 1심 선고기일이 2월 13일로 예정됐었는데, 법원의 사정으로 소송이 연기됐다.
판결을 앞두고 서귀포시는 준비서면에서, 소송을 제기한 D씨가 표선리 ▲-1번지(대지)의 소유주가 아니라서 원고 자격이 없고, 서귀포시는 그동안 이 토지를 행정재산이 아닌 일반재산으로 관리하고 있었기에 청구의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말 : 행정소송 과정에서 D씨와 서귀포시가 각각 주장한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이어지는 기사에서 자세히 전할 계획입니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2월 14일에도 D씨는 서울 대형병원을 방문해 몰핀 주사를 맞고 있었습니다. D씨는 오늘도 교통사고가 남긴 지독한 통증, 행정기관의 이해할 수 없는 처분 등 두 가지 적과 맞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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