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사이 작은 연못과 우물, 목마른 마을의 젖줄이었다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⑦]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7) 가세오름

 두 개의 봉우리가 봉긋하게 솟아 오른 오름

오름을 찾아갈 때 버릇이 하나 생겼다. 눈앞의 식물들과 흥미로운 대상에 대한 사진만 남기다가, 멀리서 보이는 전경도 유심히 찍게 된다. 오름의 이름이 처음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오름 형태에 대한 이야기로 이름을 붙여놓은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고 해도 이름의 뜻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게 마련이다.


▲ 가세오름 전경(사진=김미경)

동서남북 사방에서 보이는 모습이 달라서 어느 쪽에서 바라볼 때 그런 모습이었을까를 상상하기도 한다. 이 오름을 오르려고 토산리 방향에서 진입하다 보면 남북 두 봉우리가 봉긋하게 솟아오른 모양이다. 토산1리 마을회관에서 바라보면 이 두 봉우리사이로 분화구가 서쪽으로 터져 벌어진 모습이다.


가세오름을 처음 대면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동쪽 입구로 안내받은 초입은 초지로 되어 있어 전경이 환하게 드러나 있었다. 구불구불한 탐방로를 오르면서 만났던 눈 속에 피어있던 동백꽃이 아른거린다. 한겨울에서 가을에 다시 찾은 오름, 기억을 되살리면서 걸었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안내 지도를 보면서도 이해가 잘되지 않으니 몇 번을 찾아와야 하는 곳이다.


▲ 가세오름 오르는 길. 오른쪽은 천선과 군락이다.(사진=김미경)

▲ 해변에 주로 자생하는 사스레피나무가 가세오름에 군락을 이뤘다.(사진=김미경)


▲ 오름에 자금우 군락이 형성됐다.(사진=김미경)

큰키나무들과 작은키나무들의 조화로운 자연미


북서면에서 다시 찾은 오름, 멀리서 짙은 초록 사이로 가을이 무르익음을 알려주는 색채의 나무들이 보인다. 곰솔과 삼나무, 편백을 사면에 조림해 놓은 이곳, 나무들의 나이를 보면 이곳이 숲을 이룬지는 그리 오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체 높이 불과 100미터를 오르면서 다양한 나무들이 달라진다. 큰키나무 아래 작은 키의 사스레피나무, 동백나무 군락이 하얀 수피를 드러내며 빽빽하게 서 있다. 발아래 떨어진 솔잎과 상수리잎으로 큰키나무의 수종 확인이 더 빠르다. 또 그 아래 팔손이의 모습들이 어느 오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점이다. 누군가가 숲 가꾸기를 했을까, 해 질 무렵 찾은 이에게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기분 좋은 걸음을 선사한다. 흙이 그대로 보이는 탐방로가 아직은 자연의 느낌을 느낄 수 있어 더 좋다.


두 갈래 길 중 오른쪽 길은 탁월한 선택이다. 서쪽으로 해가 지는 방향임을 의도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조금 더 걸으니 작은키나무들은 천선과나무로 바뀐다. 늘푸른나무들도 하나씩 합심을 하고 그 아래 자금우도 한몫하며 숲을 이룬다. 서늘한 바람조차도 지는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비껴간다. 바닷바람이 한몫했을까 까마귀쪽나무들이 정상가는 주변에 많이 보인다. 기후변화로 식물들도 그 현상에 맞춰 제 모습을 드러내어 적응하면서 자연 섭리를 따라 변하고 있다. 인간의 간섭 없이도.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였던 골짜기 우물과 능선 사이 연못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는 건 그곳을 올랐을 때 시야를 가리지 않고 저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일 것이다. 곰솔이 웃자라서 앞을 가리고 있었다. 큰 비용을 들이고 설치해 놓은 시설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못내 아쉽다. 저 멀리 한라산과 파란 바다와 마을과 오름들을 모두 가렸다. 여기서 보이는 경관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 무거운 자재를 이곳까지 가져다 설치했을까싶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산하는 중허리에서 만나는 깊은 골짜기와 능선사이에는 1960년대 당시 월지동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였던 우물과 연못이 있다. 멀리서 바라봤을 때 두 개의 능선 사이로 보이는 골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곳의 우물은 솟아 나오는 물을 정수하여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하였다고 한다.


▲ 오름에 샘이 있는데, 과거 주민들이 사용했다.(사진=김미경)

▲ 오름 능선에 남은 우물의 흔적(사진=김미경)

 가세오름, 골짜기와 샘이 있는 오름

가세오름, 토산1리 주민들은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고, 그 모양이 가위의 제주어인 ‘가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거나, 갓을 닮았다고 해서 갓오름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고 믿는 것 같다. 또한, 풍수설에 ‘가사장삼형’에서 유래해서 가사봉이러고 했던 것이 가세오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 외에도 어머니의 가슴 모양이라고 하여 가슴오름 혹은 가세오름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현지 안내판에는 가세봉으로도 표기했다. 지역주민들이 믿고 있는 이름 유래도 다양하고, 고전에 기록한 표기도 다양하며, 관공서에서 쓰는 이름도 다양하다.

이렇게 이름이나 그 이름에 얽힌 해석이 다양해진 이유는 왜일까? 어쩌면 제주도 옛사람들이 불렀던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로 전해 내려오다 보니 정작 쓰일 때는 혼란스러워 다양한 이름들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오름의 이름은 ‘가+세+오름’의 구조라고 한다. 골짜기의 ‘골’과 샘에서 유래한 ‘세’가 합쳐져 가세오름이라는 것이다. 올라오면서 만났던 두 봉우리 사이에 만들어진 바로 그 골짜기, 그리고 샘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불리는 이곳 우물은 솟아나는 양이 적어서 주민들이 좀 더 깊게 파고, 석축을 쌓아 물을 고이게 해 놓아 메마른 마을에 한줄기 생명수의 젖줄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가세오름
서귀포시 세화1리와 토산1리 사이
표고 200.5m, 자체 높이 101m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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