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잊은 초록 숲과 솟아나는 샘물, 여긴 너무도 신령해!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⑥]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6) 영천오름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음침한 기운마저 감도는 오름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인 오름, 제주오름 중 아마 이런 곳도 드물다. 아니 없는 듯하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멀리서 바라본 영천악은 계곡 탓일까 구실잣밤나무들이 몽글몽글한 모습으로 오름 주변을 감싸 안았다. 어둡고 짙은 초록색은 사계절 달라지는 법이 없다. 깊고 웅장한 하천 때문일까? 난대성 식물들로 가득한 주변은 음침하기까지 하다.


▲ 영천오름 주변 효돈천에는 사철 물이 난다.(사진=김미경)

낯선 길을 찾아 나설 때 가장 빠른 선택은 지인 찬스를 쓰는 것이다. 지명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는 더욱 절실하다. 정상까지 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곳은 아직도 여름이네’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이쯤이면 단풍이 물든 나무가 많을 성도 싶은데, 가을 야생화라도 피어 있을 법도 한데 11월의 영천악은 거의 볼 수가 없는 풍경이다. 동쪽과 서쪽 사변의 모습 또한 다르다. 동쪽은 평평하고 밭을 일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과수나무가 심겨 있는 반면에 서쪽은 경사가 심해서인지 사람들의 이용이 힘들어서일까,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앉았다.

 정상 전망대 주변을 탁 트이게 정비한 수고로움에 감사

심산 지역에 살 법한 소나무들이 길쭉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어느 바람에 실려 왔을까. 최대한 빛을 찾아 위로위로 자라는 모습이다. 이곳 나무들은 전체적으로 날씬하게 뻗어 있다. 키가 큰 나무가 많은 숲은 나뭇잎이 몸에 닿는 일이 별로 없다.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 자라난 나무들은 층위를 이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듬성듬성 여태까지 인정도 못 받던 검양옻나무가 알록달록한 자태로 눈길을 끈다. 사계절 늘푸른나무들도 봄, 가을로 잎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쌓인 낙엽들 덕분에 발걸음은 폭신폭신하다. 나무 데크를 살짝 피해 걸어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 영천오름은 계절을 잃은 듯 초록을 지키고 있다. 왼쪽은 영천오름 내 소나무 숲/  오른쪽 위는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영천의 지류/ 오른쪽 아래는 산검양옻나무(사진=김미경)

정상에는 주변을 쉽게 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주변 나무들은 이미 전망대보다 높이 자라고 있었다. 다행히 최근의 일인 듯, 주변을 정비한 모습이다. 오름을 오르면 나무가 너무 자라 조망권을 뺏는다고 불평불만 터트렸는데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한라산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효돈천은 어디며 영천은 어딘가, 헷갈리는 지명들

영천악 주변은 영천과 선돌계곡(백록계곡)의 물줄기가 영천오름 주변을 서쪽과 동쪽으로 휘돌아 하나가 되어 남쪽 땅 끝자락인 쇠소깍까지 흘러내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천을 효돈천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 발걸음은 특별한 영천악 주변을 흐르는 물이 더욱 궁금해진다.


▲ 영천오름 정상 전망대에서는 한라산이 훤히 내다 보인다.(사진=김미경)

영천악 주변의 하천을 따라 위로, 돈내코 계곡 그 위로 올라가면 제1산록도로에서 지방하천 이정표가 ‘영천’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효돈천의 지류와 같은 곳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고살리 탐방로 안내도를 살펴보니 선돌계곡에서 내려오는 지류를 효돈천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지명들이 헷갈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라산 정상부근에서 돈내코를 지나 쇠소깍까지 만든 지류로 알고 있다. 고문서를 보면 영천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효돈천이라는 곳은 1910년대 이후에 기록된 지명이다. 대표성을 띤 효돈천이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 통일성이 있어야 할 듯싶다.

 솟아나는 샘이 있어서 영천이라 불렀을까, 영천악이 있어서 영천이라 불렀을까

삼국시대엔 ‘달’을 영(靈)으로 표기, 달 또는 돌이라고 읽었다고 한다. 15세기에도 ‘돌’을 ‘물’로 쓰인 기록들이 있다. 영천에 있는 돈내코에선 끊임없이 샘물이 솟아난다. 영천오름 동측을 흐르는 효돈천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샘물이 솟아나 흐른다. 신례천은 역사상 호촌천이라 했으며, 그 뜻은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내란 뜻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러니 물이 흐르는 이 내는 물이 흐른다는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영천악(靈泉岳)을 돌내 또는 돌세미오름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영천악
서귀포시 상효동 산123번지
표고277미터 자체높이 97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