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보목리 한 씨 머리 좋은데 미국 의과대학 정도야”

[인터뷰]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고향 방문한 소아과 의사 한용석 씨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 따라 미국 이민
존스 홉킨스 대 거쳐 매요 의과대에서 공부
텍사스 소아병원에서 전문의 과정 거쳐 30년 근무
“케이드라마, 케이팝, 케이푸드 인기”
“제주도 고향 방문 무척 즐겁다”
“어릴 때 똥돼지라며 기피했던 흑돼지, 지금은 맛이 환상적”
너무 빠르게 발전한 제주도 보면서 섭섭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

서귀포시 보목동 출신으로 1970년대 초반 미국에 정착해 의사로 활동했던 한찬섭 씨 일가족이 고향을 방문했다. 3주 간의 일정인데, 5월 27일 출국한다고 했다.

한찬섭 씨는 1934년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태어나 효돈국민학교와 서귀중학교, 서귀농고를 거쳐 전남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의사가 된 후 미국으로 이민했다. 슬하에 세 아들을 뒀는데, 장남과 차남도 의사가 되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남인 한용석 씨는 아버지가 90세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이 아버지에게 마지막 고향 방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5월 18일 저녁 한용석 씨를 만나 미국생활과 고향에 대한 소회를 들었다. 당시 한 씨 가족은 서귀포시 모 음식점에서 보목동 친척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 분주한 상황에서도 가족의 이민생활, 본인의 경험과 느낌 등을 적극적이고 유쾌하게 전했다.


▲ 5월 18일, 시내 한 음식점 주변에서 한용석 씨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사진=장태욱)

-본인 소개 부탁한다
한용석인데 1964년에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그때 군의관으로 강원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1968년도에 미국에서 소아과 레지던트 과정을 시작해서 1971년도에 마쳤다. 아버지 레지던트 과정이 끝나자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후 미국생활은 어땠나?
아버지는 처음에 테네시(Tennessee)주 맴피스(Memphis)에 있는 ‘세인트 쥬드 소아과 병원’(St. Jude Children's Hospital, 소아암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에서 근무했다. 1974년 6월에 캔자스(Kansas)주의 조그만 도시 커피빌(Coffey Ville)로 이주해서 소아과 의원을 개원했다. 인구가 1만6000명 정도 되는 조그만 도시인데, 난 거기에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대학은 어디로 진학했나?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존스 홉킨스 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에 입학했다. 1983년부터 1987까지 그 대학에서 공부했고, 87년부터 91년까지는 ‘매요 의과대학’(Mayo medical school)에서 공부했다.
1991년도에 휴스톤에 있는 텍사스 소아병원(Texas Children's Hospital)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시작해서 1994년도에 끝냈다. 이후 그 병원에서 30년 종도 일했다. 최근에는 ‘레거시 커뮤니티 병원’(Legacy Community Clinic)으로 자리를 옯겼다. 돈이 없는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일종의 공공병원이다. 멕시칸이나 아프카니스탄 등에서 온 이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 인터뷰 내내 유쾌하고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미국생활도 만족하는데, 제주도에 오면 친척들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사진=장태욱)


-단순하게 드는 생각으로는 어려서 미국에 이민하고 공부 적응에 어려웠을 것 같다.
조금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안, 보목리 한 씨가 머리가 좋다. 아버지도 공부를 잘했고 나도 그랬다.


- 처음에 미국에 이민했을 때 언어 문제도 있었을 테고, 동양인에 대한 편견도 있었을 텐데.
아버지가 의사였기 때문에 우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멤피스에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나를 별도로 분리해서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민 갔기 때문에 영어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의사가 되려면 학비가 많이 들지 않았나?
과거에 내가 공부할 때는 비싸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든다. 1980년대 주립 의과대학 한 학기 학비가 500불이었는데, 지금은 5000불이다. 특히 사립대학 학비가 비싸서 지금은 1년에 7만불(약 9000만원) 정도 든다.

-결혼은 미국인과 했나?
그렇다. 아내는 백인 여성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한국인과 미국인 절반이라고 본다.

- 아내는 무슨 일을 하나?
아내는 간호사다. 병원에서 만나서 결혼했다.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만나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 생활 어렵지 않나?
내가 아이를 좋아한다. 내 나이가 60세인데, 마음은 지금도 15세, 아직도 어린이다. 내가 재미있으니, 힘들게 일하는 것 같지 않다.

- 한국은 젊은이들이 애기를 낳지 않기 때문에 소아과 의사들이 병원을 유지하는데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소아과 의원들이 많이 문을 닫았다.
미국은 한국보다 애기를 많이 난다. 미국은 그 걱정이 없다.

-그럼 미국에서 의사들 사이에 소아과가 인기 분야인가?
그렇지는 않다. 미국에서 소아과는 가장 돈이 적게 벌리는 분야다. 미국에서는 수술을 하는 분야는 수입이 많고 수술을 하지 않은 분야는 수입이 적다. 내가 소아과를 선택하려니 아버지가 많이 반대했고, 싸우기도 했다. 아버지도 소아과 의사여서 아들은 돈이 잘 벌리고 존중을 받는 과를 선택하길 바랐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선택하고 즐겁게 하는 거다.


▲넉살이 좋아 친척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사진=장태욱)

-미국에서 인천공항-김포공항을 거쳐 제주도에 왔을 것이다. 긴 여정 때문에 피곤했을 텐데.
내가 어려서부터 제주도에 자주 왔다. 여기에 친척들이 있고, 그래서 고향이고 집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왔다는 생각에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친척들과 어울리다 보니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제주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나?
아이들이 이번에 친척을 많이 만났는데, 기분이 좋다고 한다. 내가 아이들을 빨리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실수했다고 생각한다. 딸도 자신을 왜 이제야 데리고 왔냐며 섭섭하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인들이 제주도를 아는가?
제주도는 조금 아는데,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안다. 케이드라마와 케이팝, 케이푸드가 미국에서 인기다. 나는 케이드라마 좋아하는데, 아이들을 케이팝 좋아한다. 한국 음식 가운데는 특히 불고기 인기가 높다. ‘코리안 바비큐’라고 하면 맛있기로 유명하다. 떡볶이도 조금씩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 그동안 제주도에 몇 번 왔었나?
이번이 제주도에 6번째 방문이다. 고향이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자주 오려고 했다. 아이가 셋인데, 큰 아이와 막내는 이번이 첫 번째 방문이고, 둘째는 5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데리고 왔었다.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데려오고 싶었는데, 코비드(COVID) 때문에 못 왔다.


-제주도에 오면 무슨 느낌이 드는가?
너무 많이 발전했다. 길도 넓어졌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하는 제주도와 많이 달라졌다.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 있나?
흑돼지 맛이 뛰어나다. 어릴 때는 제주도 돼지를 ‘똥돼지’라 부르지 않았나? 그래서 제주도 돼지를 먹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흑돼지를 먹어보니 맛이 환상적이다. 미국에서 돼지고기를 먹으면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제주도 흑돼지는 그런게 전혀 없다. 정말 좋았다.


-미국에서 현지인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기 때문에 제주도에 정착해서 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가 와보니 제주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긴다. 여기에 친척들이 있다. 그리고 다녀보니 제주도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다. 70세쯤 되면 미국에서 절반 일하고 제주도에서 절반 일하는 식으로라도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


▲한용석 씨는 친척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미국에서 의약품을 많이 준비해 왔다. 친천과 헤어지기 전에 가방에서 약품을 꺼내는 장면이다.(사진=장태욱)

-제주도에서 특별히 불편하거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있나?
사람들이 쓰레기 던지는 게 기분 나쁘다. 내가 시내 숙소에서 보목까지 걸어봤는데, 길가에 쓰레기가 너무 많다. 나도 모르게 영어로 “Don't throw the trash on my island!(내 섬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고 했다. 내가 사진도 찍어놓았다. 비행기 티켓을 버린 사람은 이름도 알고 있다.


-이번 돌아가면 언제 다시 제주도에 올 계획인가?
막내가 8월에 교환학생으로 연세대학에 올 기회가 있다. 만약에 막내가 온다면 나도 따라 오고 싶은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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