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들어왔나?’ 했는데, 8천원 백반의 반전

[동네 맛집 ⑪] 신효 ‘구산식당’

삼일절 즈음에 꽃샘추위가 기습했는데,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완연해졌다. 대지에 숨을 쉬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숨을 죽였던 야초들이 땅 위로 새싹을 내고 귤나무도 초록빛으로 색을 바꿔 입는다.

이럴 때 농부는 분주해진다. 농장의 잡초가 더 크기 전에 뽑아야 하고, 나무도 이 시기에 심어야 한다.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거름을 줘서 나무에 양분도 보충해줘야 한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이번 봄엔 유독 비가 잦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농부들은 모두 점심을 음식점에서 해결한다. 단골 식당을 정해서 찾기도 하지만, 같은 음식만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근처에 식당 세 군데쯤 정해놓고 적당히 바꿔가며 먹는 게 좋다.


▲ 구산식당은 백반 단품 음식점이다.(사진=장태욱)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귀포 농촌지역에 의외로 식당이 많다. 그중 장사가 잘 되는 곳은 모두 현지 농민이 찾는 집이다. 지역 주민의 발을 끌려면 맛도 좋아야 하고,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아야 한다. 낮에 농민들이 작업복 차림으로 몰려가는 집이라면, 절대 손님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가끔 엉뚱한 곳에서 밥을 먹고 ‘바가지요금’ 어쩌고 하는 여행객이 있는데, 단순한 요령을 모르기 때문이다. 여행을 오면 유튜브나 SNS보다 현지인의 생활에 주목해볼 일이다.

효돈 ‘구산식당’은 그런 식당이다. 점심에만 장사를 하는데, 찾는 이들은 하나같이 작업복 차림이다. 열 명이라면 여덟은 밭일 하다 온 사람이고, 두 사람은 기술자나 배달기사로 보이는 사람이다.

식당에 처음 들어갔을 땐, 잘못 들어온 건 아닌지 걱정도 했다. 식당 안이 정돈이 잘 되지 않아 어지럽고 조명도 어둡다. 게다가 메뉴판에 백반, 국수, 닭볶음탕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실상은 백반 단품 음식점이다.


▲ 불고기와 두부볶음이 반찬의 핵심이다.(사진=장태욱)

백반 2인분을 주문했는데, 금새 반찬이 나온다. 돼지불고기와 두부볶음, 배추김치, 고사리무침, 시금치무침, 감자채볶음, 콩나물무침, 마늘장아찌가 식탁에 올랐다. 식당 분위기와 달리 정갈한 반찬이 오르는 걸 보고 걱정이 가셨다. 두부볶음과 마늘장아찌 맛을 보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장아찌 맛이 최고라고 했다.

하얀 쌀밥에 무국이 나오는데, 밥은 적당히 뜸이 들어 찰지고 맛이 있다. 무국도 고기국물 이 잘 우러나는데 너무 짜거나 맵지 않아 좋았다.


▲ 손님은 모두 작업복 차림이다.(사진=장태욱)

밥을 먹고 있는데, 일복을 입은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들어와 가게가 금새 가득 찼다. 옆에는 하는 얘기를 들으니, 이곳을 자주 찾는 분들이다. 아주머니 한 분이 “일할 때는 밥에 국과 반찬이 나오는 백반을 먹어야 하는데, 효돈에 그런 식당이 없다”라며 “8000원에 이렇게 먹을 수 있어서 여기 오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인장은 대전이 고향인데, 제주도에 이주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식당은 꽤나 오래된 곳인데, 지금 주인장이 7년 전 쯤에 인수해 운영한다. 구산에 구(鳩)는 비둘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주인장이 비둘기를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위치는 서귀포시 신효로 23. 백반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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