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된 역사 전면에 나섰던 화전민, 제주4.3에서 치명적 피해 입었다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⑪] 제주도 화전의 소멸

색달동 냇서왓은 1948년 항공사진에선 40채 내외의 집들이 보인다. 이로 본다면 냇서왓은 위쪽 모라이오름 ‘빌레흘’ 화전민들이 이주해 살았을 가능성이 있고, 인구가 자연적으로 증가하고 자녀가 분가하는 과정에서 집이 늘어났을 수도 있다.

냇서왓 출신 김〇열은 제주4·3 당시 외할아버지가 모라이오름 진지동굴에 숨어 목숨을 부지했고, 예래동으로 피신했다 마을이 복구됐다는 소식에 천서동으로 올라와 메밀, 감자 등을 재배하며 살았다고 한다. 복구마을엔 14세대 정도가 들어와 살았으나 생활고로 다시 흩어져 현재는 복구됐던 집터의 흔적으로 허물어진 잔해만 남아있다.


▲ 멋체왓숲길에 화전민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사진=한상봉)

한남리 머체왓 화전 사람들은 제주4.3 당시 산속으로 피신했다가 소개령이 내려지자 해안지역으로 내려갔다. 인근 200m 거리에는 머체왓주둔소가 만들어졌고, 머체왓마을은 오랜 기간 방치됐다. 제주4.3이 종결된 후 한 가구가 올라와 목축에 종사하며 살다가 남원으로 이주해 마을은 텅 비게 됐다. 제주4.3 이전에 정 씨, 고 씨, 김 씨 등이 살았던 삶의 터전이 지금은 탐방로 숲길에 남아있다.

송당리 2020번지 일대의 장터마을은 제주4.3 이후 복구되지 못했고, 이승만이 송당목장을 만들어 결국 사라졌다. 장기동 사라진마을 표석에는 300여 년 전에 화전민이 황무지를 개간해 잡곡을 재배하며 살았던 마을로 제주4.3에서 마을이 전소돼 사라졌다고 기록됐다.


▲ 장기동 사라진 마을 표석(사진=장태욱)



▲ 장기동 주변 국립송당목장(사진=장태욱)

이후 모 업체는 장기동에 군부대가 들어선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렸고, 장기동에 땅을 소유했던 사람들은 땅을 싼 값에 내놓았다. 업체는 주민들에게 땅을 헐값에 사들였다. 무장대에 납치됐던 마지막 무장대 오원권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 장터마을에서 바라볼 때 안쪽에 있는 오름이 안돌오름이다.

종남굴은 와산리 446번지 일원에 있는 마을로, 토벌대가 공격하자 주민들은 인근 ‘왕모르’ 등지로 몸을 숨겨 목숨을 부지했다. 인근에 동원주둔소가 만들어졌는데, 마을은 오랫동안 복구되지 못했다. 동원주둔소가 폐쇄된 후 주둔소 안에 들어가 살던 김〇〇은 종남굴로 돌아온 후 파괴된 집을 보수해 살았다. 1960년대 이 사람이 살던 집터와 돼지우리, 솥단지와 병들이 남아있는데, 4·3 당시 집터라고 잘못 해설하고 있는 실정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 천서동 재건마을(사진=한상봉)

‘물터진골(수기동)’과 ‘궤드르(고평동)’ 마을은 주민들이 희생되어 복구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가 이후 고평동에 한 가구가 되돌아와 살았다. 웃한질가 물터진골은 번영로가 마을 터 위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처럼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목장 화전 터들은 제주4·3을 거치며 완전히 파괴됐다. 이후 복구된 마을도 새로운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며 사람들이 떠나 그 흔적만을 남았을 뿐이다.

석유 곤로의 등장으로 나무와 숯으로 밥을 해 먹을 필요가 없어져, 나무와 숯을 만들어 팔던 화전민은 수입원을 잃었다.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나자 화전마을 주민들은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화전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다.

강제검의 난, 방성칠의 난, 법정사항일운동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주 화전민들은 시대의 변방에 머물지 않고 모순된 세상을 바꿔보려고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4·3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맞으며 역사의 희생자가 되어버렸다. 화전민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주 역사의 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총 11회에 걸쳐 제주도 화전민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제주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봤습니다. 이후에는 개별 화전마을을 소개하는 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필자 주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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