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빨간 꽃, 바람도 머무르는 빌레낭집의 완성

[주말엔 꽃] 법환 빌레낭집 뒤뜰에 피어난 명자꽃

법환 막숙이 포구와 범섬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빌레낭집’.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갈 것 같은 이 집 뒤뜰에 앙증맞고 빨간 꽃이 피었다. 영등달과 함께 찾아온 빨간 꽃 때문에 어여쁜 집에 봄이 익어간다.

제주도에선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 부른다. 영등할망이 바람신을 몰고 와 바다를 뒤집고 가는 절기로, 이 기간에는 해녀들도 바다 출입을 삼간다. 대신 밭에서 봄 농사를 준비하며 영등할망이 무사히 떠나길 기다린다.

실제로 영등달이 시작되면서 비바람이 한바탕 섬을 휩쓸고 갔다. 여기저기서 바람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이 보인다. 영등할망이 날짜에 맞춰 찾아오는 걸 보니 자연이 제 질서를 잊지 않은 모양이다.


▲ 빌레낭집(사진=정병욱)

6일, 모처럼 비가 개도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약속이 있어서 법환포구를 갔는데, 시간이 남아서 잠시 집 구경을 했다. 법환 막숙이포구와 범섬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난 2021년 빌레낭집이 들어섰다. 일행과 그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 집의 주인장은 강의웅 씨. 강 씨 집안은 300년 가까운 시간을 대를 이어 이 터에서 살았다. 집을 짓기 전에 이 자리엔 초가집이 있었는데, 집을 뜯으며 상량문을 보니 그간의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

강의웅 씨는 어머니를 위해 새 집을 지으면서, 이전 집의 내력을 그대로 담아보기로 했다. 지붕은 초가의 형태를 유지하고, 원래 있던 기둥과 서까래 등은 새 집을 지을 때 그대로 활용했다. 그렇게 해서 재생한 집이 ‘빌레낭집’이다.

빌레는 제주어로 돌을, 낭은 나무를 의미한다. 집을 새로 지을 때 보니 대지 밑에는 단단한 암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암반은 300년 동안 이 집과 거기에 사는 사람을 지키는 반석이 됐다. 그리고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있어서 고택의 분위기를 더한다.

사실 집주인인 강의웅 씨는 ‘나무박사’다. 나무를 가꾸고 치료하는 일을 배워 지금은 수목원에서 일한다. 고재를 활용하는 생각에서도 나무를 귀히 여기는 주인장의 품성을 읽을 수 있다.


▲ 빌레낭집 뒤뜰 담벼락에 명자꽃이 피었다.(사진=장태욱)

그간 여러 차례 이 집을 다녀갔는데, 처음 보는 게 있다. 우선 마당으로 들어서기 전에 ‘제주다운건축상’ 현판이 보인다. 지난해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가 제주의 정체성을 담은 건축물로 선정해 준 것이다.

그리고 뒤뜰에 피어난 꽃. 봄인데 빨간 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무엇인지 자세히 살피니 명자꽃이다. 명자나무는 서귀포에는 흔하지 않은데 다른 지역에선 생활 속에서 자주 보인다.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으로 다 자라면 키는 2미터 정도에 이른다. 해가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가지를 다듬기 쉽다. 생장이 빠르고 꽃이 화사한 데다 관리가 쉬어 울타리 나무나 정원수로 쓰인다. 일본이 원산인데, 작고 빨간 외양 때문인지 애기씨꽃나무 또는 아가씨나무라고도 불린다.

꽃은 봄의 초입에 핀다. 매화가 피고 난 후 바로 피어 화려한 색으로 봄이 왔음을 알린다. 꽃의 지름은 3센티미터 안팎인데, 꽃잎은 5장이다. 암술대는 5개, 수술은 30~50개개 빼곡하다.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맺는데, 열매가 다 자라면 크기가 동백 열매만큼 된다.


▲ 명자꽃(사진=장태욱)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여기에 심은 지 3년이 되었다고 한다. 건축을 마치고 이듬해 봄에 심은 것 같다. 봄에 어울리지 않게 새빨갛게 피는 꽃을 보니 집의 풍경에 뭔가 한 가지 더하고 싶은 주인장의 마음이 읽힌다.

빨간 명자꽃과 함께 법환 빌레낭집에 봄이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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