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직장 정리하고 오일장 과일장사, 이 불경기에도 웃는다
[장보기] 서귀포시 중문오일시장
겨울이 다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찬바람이 분다. 겨울이 지나도 봄이 오지 않는 이상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에 시장에 가면 조금 일찍 봄을 맞을 수 있다. 채소상에 봄나물이 나오고, 과일가게엔 봄에 먹는 과일이 나온다. 그리고 꽃가게엔 봄꽃이 행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날씨로는 아직 체감할 수 없는 봄인데, 시장에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2월 28일 아내와 함께 중문오일장을 찾았다. 매월 끝자리가 3, 8일인 날에 중문에 오일장이 선다.
오일장은 중문 중심시가지 남쪽에 있다. 지난 1965년 개장된 시장으로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자리가 좁고 주차장 시설도 없어서 규모는 매우 제한적이다. 점포수는 66개로, 서귀포향토오일시장의 1/9에 불과하다. 서귀포시가 몇 해 전에 중문오일장을 이전해 시설도 확충하고 점포수도 늘릴 계획을 세웠는데, 부지를 확보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고 전한다.
삼촌들이 집에서 재배한 채소를 가져와 오일장 입구 도로변에서 팔고 있다. 중문오일장에 등록된 상인인 아닐 텐데, 시장마다 물건을 파는 삼촌들이 있다. 오래 전 오일장은 주민들이 자기 물건을 내다파는 곳이었다. 집에 기르던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돼지를 장에 내다 팔았고, 참깨를 수확하면 그걸 가져다 팔았다. 후에 오일장마다 상인들을 모집해서 등록상인만 장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어르신들은 예외다. 어르신들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고, 오래된 관습이 일부 남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문오일장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장을 보는 손님이 많지 않다. 오일장이면 지나는 사람들로 통로가 번잡해지는 게 보통인데, 여긴 한산하다. 장에서 만난 상인은 “여긴 다른 오일장에 비해 손님이 너무 적다. 심지어는 명절 대목에도 한산했다.”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손님이 찾는 곳은 어물전이다. 어물전이 오일장 입구 쪽에 있기도 하거니와, 신선한 생선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이점 때문일 것이다.
오일장 상가 북쪽 계단을 오르면 과일가게들이 있다. 그 가장 구석에 아버지와 아들이 과일을 팔고 있다. 오래 전부터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따서 ‘태현청과’라는 상호로 장에서 과일을 팔았다. 그런데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아들 김태현(37) 씨가 4년 전 귀향해 아버지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일을 나눠서 사과, 배, 딸기, 키위 등 다른 과일을 아버지가 팔고, 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 감귤류는 아들이 판다. 김태현 씨는 오일장에서 과일을 파는 일을 넘어 다른 지역의 소비자와 직거래로도 많은 매출을 올린다.


김태현 씨는 “장사를 따라다닌 지 4년이 되어서 이젠 일에 많이 적응했다.”라며 “소비자들에게 좋은 물건을 팔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수입은 유지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설까지 그런대로 팔았는데, 설 지나니 매출이 크게 줄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명절 전에 사놓는 물건이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최근 경기가 싸늘하게 식으며 소비자들이 과일 소비를 줄이고 있다. 이 철에 출하하는 한라봉 시세가 추락하면서 농민과 농협, 중가상인들이 모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웃으면서 상황을 넘기는 걸 보니, 젊은 아들도 이제 어느 정도 경륜이 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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