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뚜껑만 한 접시에 왕돈까스, 4인용 테이블 절반 차지

[동네 맛집 ㉚] 동홍동 ‘왕돈까스와 밀면’

고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돈가스를 먹었다. 단순히 돈가스를 처음 먹은 게 아니라, 돈가스를 앞에 두고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포크, 나이프를 처음 잡았다. 포크, 나이프가 먼저 나오고 후에 스프와 돈가스가 차례로 나오는데, 그건 음식의 신세계였다.


▲ '흑돼지 왕돈까스' 한 접시(사진=장태욱) 

포크, 나이프도 서툴고, 돈가스 한 접시를 다 먹었는데 배는 부르지 않았다. 다만, 화려한 조명과 흰색 식탁포가 깔린 테이블, 자주 가던 중식당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돈가스를 통해 음식이 배부름 말고 다른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귤 추수가 한창인데, 깜짝 한파가 찾아왔다. 비까지 겹쳐서 수확을 잠시 멈춰야 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이런 땐 맛있게 먹고 푹 쉬면 그만이다.

시내에서 돈가스 한 접시 먹기로 했다. 맛집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은 꾸준히 찾는 집이다. 어릴 적 돈가스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추억도 맛볼 수 있는 곳. 동홍동 ‘왕돈까스와 밀면’을 찾았다.


▲ 돈가스 접시에 밥과 샐러드, 감자튀김, 콘샐러드가 같이 나왔다.(사진=장태욱)

돈가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흑돼지 돈가스를 고른다. 둘이 갔기에 ‘흑돼지 왕돈까스’ 한 접시를 주문했다. 주인장 말로는 왕돈까스 한 접시가 “넉넉한 2인분”이라고 했다.

포크, 나이프가 먼저 테이블에 오른 후 물과 함께 반찬으로 단무니와 김치가 올랐다. 그리고 5분도 채 기다리지 않았는데, 돈가스 한 접시가 나왔다. 그런데 말이 접시지 이건 가마솥 뚜껑만하다. 접시 하나가 4인용 테이블 절반을 차지한다. 붉은 소스가 돈가스를 덥고 있는데, 색깔만도 입맛을 자극한다. 거기에 밥과 양배추샐러드, 감자튀김, 콘샐러드가 곁들여 나왔다. 그리고 바구에 빵도 나오는데, 두 사람이라 빵도 두 개다.


▲ 토마토 소스 듬뿍 묻은 돈가스, 담백하고 부드럽다.(사진=장태욱)

돈가스가 너무 커서 먹을 수 있게 자라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포크로 돈가스 한 점을 찍어 먹는데, 토마토소스의 진한 맛고, 고기의 부드럽고 담백한 느낌이 잘 어우러졌다. 그렇게 한 점 한 점 먹다보니 어느덧 배가 불러왔다. 이 집에 맥주도 팔기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맥주 한 잔을 곁들여도 좋을 것이다.

밥과 빵, 감자튀김까지 있어서 나온 음식을 다 먹는 게 버겁다. 주인장 말대로 “넉넉한 2인분”이다. 이 정도면 점심보다는 저녁에 와서 천천히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은 “돈가스를 모두 수제로 직접 만든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13년째 가게를 하고 있는데, 남편은 고기를 다져 돈가스를 만들고 조카가 요리를 한다”고 했다. 가게에는 주인장과 주인장 조카가 일을 한다.

세상이 급변하다고 보니 가게를 꾸준히 운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젊은 사장님이 불경기도, 코로나19 위기도 넘고 가게를 지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이런 가게가 있어 고교 때 돈가스를 처음 날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왕돈까스와 밀면
서귀포시 동홍서로 83 대오아파트 1층 상가
흑돼지 왕돈까스 2만3000원
흑돼지 1인분 돈까스 1만1000원
흑돼지 매운돈까스·통모짜치즈돈까스·눈꽃치즈돈까스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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