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 오리고기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소리, 소주를 부른다
[동네 맛집 ⑬] 남원 ‘금화식당’
나이 쉰을 넘기고서야 깨달은 이치인데,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食口)가 된다. 사전적으로 ‘식구’라는 단어가 밥(食)과 입(口)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그 간단한 이치를 깨닫는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밥을 같이 먹는 ‘식구’가 늘어나는 만큼, 재미있는 일들도 많아진다.
밥을 먹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두 명이 같이 먹기에 적당한 메뉴가 있고, 10명이 모여서 먹기에 좋은 메뉴가 있다. 제돈 주고 먹기 편한 음식이 있고, 얻어먹기 편한 음식이 있다. 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 대접 받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음식도 있다. 그러고 보니, 식당과 메뉴를 고르는 것도 인생 경험이 필요하다.
내게 4명이 푸짐하게 저녁 식사를 할 음식점을 고르라면 찾는 식당이 있다. 어머니가 자주 찾는 식당인데, 요즘은 내가 더 자주 간다. 남원읍사무소 인근에 있는 금화식당인데, 오리요리가 일품이다.
어머니는 이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먹으면 속이 편안하다고 하셨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속이 불편할 수 있는데, 오리는 먹어도 속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하셨다. 후식으로 먹는 메밀수제비도 속 편하기는 최고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함께 식사할 날이면 선택은 늘 금화식당이다.
여러 가지 오리요리 메뉴가 있는데, 우리가 주문하는 것은 어김없이 생구이 한 마리다. 5만5000원이니 가격으로도 큰 부담 없고, 양으로도 4인 가족에게 충분하다. 주문을 하면 우선 밑반찬으로 배추김치와 샐러드, 고사리무침, 미역콩나물무침, 멸치볶음, 마늘장아찌 등이 상에 오른다. 고기를 쌈으로 먹을 수 있게 상추와 고추, 쌈장이 함께 나오고, 간을 위해 소금장도 나온다.
반찬이 깔리고 난 후 곧 오리고기가 담긴 접시 하나가 나온다. 양으로도 만족스럽고, 생고기 색깔도 쇠고기 육회나 연어고기를 떠올릴 만큼 붉은 색이다. 붉은 빛을 발하는 오리의 살코기가 식욕을 자극한다.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 가열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 껍질 부위에서 기름이 뿜어져 나온다. 고기의 한쪽이 익어 붉은색이 회색으로 변할 무렵, 불판 위에 팽이버섯과 썬 양파, 감자 조각 등을 올려 함께 익힌다. 그리고 양념을 한 콩나물과 김치, 부추 등을 올려 오리에서 나오는 기름에 볶는다. 시간이 지나면 익어가는 오리고기와 부추가 어울려 건강한 향기를 풍기다. 다 익은 오리고기 한 점과 부추 한 젓가락, 익은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단백하고 풋풋한 향이 몸으로 스민다.
불판 위에서는 오리고기와 갖은 채소가 익어가면서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김을 뿜어낸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젓가락에 닿는 것을 입에 넣기 바쁘다. 이쯤 되면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소주 한 잔 생각이 난다.
그렇게 소주 한 병 비울 무렵이면, 주인장이 죽을 먹을 것인지 수제비를 먹을 것인지 묻는다. 수제비는 밀가루 수제비와 메밀 수제비가 있는데, 우린 항상 메밀 수제비를 선택한다. 바닥 넓은 냄비 위에 수제비가 나오는데, 국물이 뿌옇다. 오리 뼈로 맛을 낸 탓에 국물 맛은 진하고 단백하다. 건강한 맛을 내는 국물만으로도 식당은 평가를 후하게 받을 만하다.
음식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배가 부를 무렵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지인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식당 한쪽 벽에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의 흔적이 있다. NC다이노스 노경은 선수와 SSG랜더스 박경수 선수의 사진이 있고, 가수 이문세 씨의 사인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배가 부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장은 어머니가 10년 정도 운영하던 식당을 물려받고, 이후에 7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식당은 아닌데, 수제비 국물 맛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려낸 맛이다. 모녀에게 타고난 손맛이 있는지도 모른다.
구수한 오리고기와 단백한 수제비가 당기는 사람은 남원읍사무소 인근 금화식당을 찾을 일이다.
위치는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689번길 17. 생구이 한 마리 5만5000원, 주물럭 5만8000원, 백숙 6만 원, 샤브샤브 6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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