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 예술의 산실 경독재(耕讀齋), 훗날 보물이 될 것이다

소농 오문복 선생에 대한 기억 - ②

소농 오문복 선생의 인연 가운데 성산포 주관으로 시화전시를 열었던 일은 평생의 보람으로 생각한다. 회원들끼리 사석에서 의견이 오갔는데 전시가 성사됐고, 관람객들이 많이 찾았다.

■ 소농 오문복 시서화전(素農 吳文福 詩書畵展)

성산포문학회가 창립하여 1년쯤 되던 2009년 어느 날,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소농 선생 애제자인 한용택(서예가 호. 雲菴) 문우와 술잔을 기울였다. 내가 한용택 문우에게 다짜고짜로 "운암, 소농 선생 전시회 열어드리면 어떨까?" 라고 운을 뗐다. 그랬더니 운암도 싫지 않은 눈치를 보였다. 그러면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 때 날을 잡아서 서귀포시청 문화예술과에 찾아가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둘이서 난생 처음 시청 문화예술과를 노크하여 과장과 전시회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 성산포문학회가 2009년에 주관하여 개최한 '소농 오문복 시서화전' 개막식(사진=이승익)

그 당시 과장님은 기대 이상으로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소농 선생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에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라 생각한다. 약간의 보조금을 약속 받은 후 문학회 회의를 소집했다. 문학회는 소농선생 첫 전시회를 성산포문학회 주관으로 열기로 결정하고 제반 사항을 준비하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행사를 진행 할지 매우 난감하였지만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을 진행하였다.

특히 김순이(전 제주문협 회장 역임) 시인의 협조가 큰 힘이 되었다. 김 시인은 전시작품 판매에도 두각을 보였다. 전시회는 성황이었다. 전시 기간 일주일 내내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전시 기간 내내 가슴이 뛰었다.

그 당시 스크랩 기사를 보면 대성황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성산읍이 생긴 이래 대 성황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하고 있다.

'9월 9일 오전 10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우근민 전 도지사.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이생진 원로시인. 전방언 제주도 서예작가협회 이사장을 비롯해 15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식전 축하 행사로는 강재천·진순애·강추자 씨 등 국악인들이 출연하여 대금·판소리·민요 등을 공연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소농 선생 시서화전에는 각종 서체의 서예 작품과 사군자를 비롯한 수묵화 100여 점이 전시되었다.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인들은 제주의 빼어난 경치를 소개하는 10폭짜리 병풍 영주십경을 비롯해 부채 족자 등에 담긴 소농선생의 한시 등을 감상하며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전시기간 내내 회원들이전시장을 지키며 오는 손님들을 접대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지금 그 일을 하라고 하면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열정을 살릴 수도 없지 싶다. 성산포문학회의 큰 족적을 남긴 행사라고 자부하고 싶다.


▲ 성산포문학회 회원들이 소농 선생을 방문해 경독재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장면(사진=장태욱)

■ 경독재(耕讀齋)를 들여다 봄

소농선생 하면, 서재로 사용하는 경독재(耕讀齋)를 빼놓을 수 없다. 경독재는 소농 선생의 평생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던 예술의 산실이며 소농 선생과 소통하는 모든 이들의 사랑방이다. 그리 높지 않은 야트막한 집은 옛날 모습 그대로다.

일설에 의하면 경독재 본체는 정의현 소재지였던 성읍리 여느 관청집(?) 이문간(드나드는 문)이라 들었다. 어떤 연유로 경독재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소농 선생과 썩 어울리는 집이 아닐 수 없다.


▲ 경독재는 소농 선생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의 산실이다.(사진=장태욱)

우선 경독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서재 편액이 눈에 띄는데 경독재(耕讀齋)란 글씨는 평생의 스승인 소암 선생께서 직접 썼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소농서실(素農書室)’이란 휘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역시 소암선생 글씨다. 다른 벽면엔 소농 선생과 교유했던 이들 글과 그림이 걸려 있다. 특이한 점은 평생의 스승인 소암 선생과 춘산 이상학 선생 영정이 사이를 두고 걸려있다.

경독재 마당은 조선시대 선비의 뜰을 닮았다. 눈에 띄는 나무만 보더라도 매화, 드릅, 비파, 오죽 등 여러 가지 나무가 연못을 에워쌌으니 선비 집 다운 모습이다. 짐작건대 경독재는 지금도 유명하지만 후대엔 우리지역 문화 산실로 인정받아 그 빛을 유감없이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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