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억새흔들리며 우는 날이면누구에게나비밀의 정원이 있다.제국의 목마른 칸(Khan)이 감춰진 땅에제 욕망을 담을큰 못을 팠다.음산한 새벽바람과누적된 시간의 잔해와검회식 구름 낀 하늘로한못이 넘친다.PHOTO BY 양희라
두 개의 봉우리가 봉긋하게 솟아 오른 오름 오름을 찾아갈 때 버릇이 하나 생겼다. 눈앞의 식물들과 흥미로운 대상에 대한 사진만 남기다가, 멀리서 보이는 전경도 유심히 찍게 된다. 오름의 이름이 처음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오름 형태에 대한 이야기로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목장에 빠르게 화전이 형성된 배경을 앞서 설명했다. 관아는 목장화전 주민에게 장세와 가경세를 걷어들여 필요한 경비로 사용했다. 반면, 산림보호에 대한 재제로 곶화전은 목장 화전보다 늦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벌채와 관련해하여서는 마을에서
모슬포 자리젓 냄새겨우 닿는 거리에사철 절(파도)이 운다는절울이오름장차 올 비극예감이라도 했나?제 번뇌 감당 못해폭발해버린 바다지우지 못한 상처치료하려는지청명한 하늘은 바람 일으키고부지런한 바람은 절을 부른다.PHOTO BY 양희라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음침한 기운마저 감도는 오름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인 오름, 제주오름 중 아마 이런 곳도 드물다. 아니 없는 듯하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멀리서 바라본 영천악은 계곡 탓일까 구실잣밤나무들이 몽글몽글한 모습으로 오름 주변을 감싸 안았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원장 진희종)이 올해 칸트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제주에서 『순수이성비판』읽기’ 강좌를 열었습니다. 9월 25일부터 10월 30일까지 5차에 걸쳐 강의 칸트 철학의 정수를 탐구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칸트 철학 연구자인 전남대
조선후기에 기후위기가 반복되면서 기근은 일상화됐고, 화전의 확대는 숲의 파괴로 이어졌다. 김영우의 『조선 숲은 왜 사라졌는가 : 2022』에는 숲의 파괴 과정을 담은 내용이 있다. 1500년대 임진왜란 후에는 도성 중심으로 산림이 훼손되었는데, 이
은빛 억새 출렁이는아끈다랑쉬 가는 날일렁이는 마음에간밤엔 잠을 설쳤다.겨우 맞은 가을인데나를 반긴 건은빛 햇살 말고술에 취한 바람흥분한 바람 대신억새가 춤을 추고놀란 철새는하늘로 날아올랐다.PHOTO BY 양희라
희미한 길, 그러나 희열을 주는 길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사람들은 낯선 곳을 찾아 나선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뭔가 회복해 보고자 움직인다. 왜 오름을 오를까. 많은 사람이 오르고 내려온다. 그리곤 sns에 글들을 남긴다. 지칠 만도 한데 사람들은 오히려 힐링했
생물도를 포함해 제주도화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들어가 살았을까?제주에 화전이 등장하는 기록은 『세종실록』에 고득종(高得宗)이 하잣 축성 건의와 관련한 기사에 나타난다. 1430년 2월에 하잣이 완성되며 목장 안 344호를 옮겼다는 내용이다. 4년 뒤『세종실록』에는 제
가는 시월이못내 서러워장작 같은 빗줄기토해내던 하늘인데 단풍에 애가 닳던 마음과 통했을까?겨우 주말에 울음 그쳤다. 새벽, 천아숲길 적막 흔드는 물소리 좇아 노로오름 가는 길 설문대할망 요강단지 바위 웅덩이엔 가으내 노루 마실 물이 가득PHOTO BY 양희라
드러나 보여서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 중산간이라는 곳은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불편하고 낯선 공간일 수밖에 없다. 보전이라는 미명하에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은 이곳은 금세 흥미를 잃고 애물단지 취급, 새들과 뭇 생명체들만 찾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글에 나타난 멋진 풍광
칸트 탄생 300주년을 맞아 서귀포에서 열린 ‘제주에서 『순수이성비판』읽기’ 강좌가 마무리됐다. 강좌에 참석한 시민들은 모처럼 귀한 강의를 듣게 되어 기쁘고 보람이 있다는 반응을 밝혔다. 강의를 맡은 김상봉 교수는 시민들이 너무도 진지하게 강의를 들어줘서 오히려 고맙다
서홍동 생물도 화전은 산록도로 북쪽 서홍동 2559~2564번지 일원에 살았던 화전 지역이다. 일제총독부가 제작한 「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중 제주지형도에 생물도(生水洞)가 보인다. 솔오름에 인접한 서북쪽 기슭에 동홍동 연자동이 있고, 그 서쪽 서홍동에 생물도가
3. 교리(橋里)에서 교래촌(橋來村)으로 바뀌어 도리 마을이 교래촌(橋來村)으로 처음 기록된 자료는 1696년 이익태의 시문집 『지영록 知瀛錄』이다. 이 목사는 서귀포 유람을 마치고 조천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래촌에서 하룻밤 유숙하였다고 적어 놓았다. 교래리에 객사(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