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판관화전에 들어왔는데, 4·3 때 가문이 거의 몰살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52) 영남동 화전민(2)
서귀포시 영남동은 과거 화전민이 살던 마을이다. 주변에 판관화전과 코빼기화전을 위성화전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판관화전은 1914년까지 사람이 살았는데, 1918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거기에 살았던 것으로 확인되는 집안이 있다. 앞선 기사에서 소개한 김항률 집안과 문두현의 조상 외로도 강정동 김 씨 집안이 있다.
강정동 김동호(1935생)는 자신의 집안이 애월읍 신엄리에서 이사했다는 부친의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큰아버지가 1884년생이고 그 위로 할아버지 김석률이 영남동 판관화전으로 왔다고 했다. 한 세대 30여 년을 더하면 할아버지는 1850년 전후에 출생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큰아들 김기반이 태어난 1884년 이전에 영남동 화전지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에게서 “사든 게 힘들어서 영남동으로 들어갔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지적원도에는 김석률은 영남동에 들어오기 전 이미 영남동 315번지에 밭을 소유하고 있던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거주하는 집은 영남동 204번지로 되어 있어 판관화전에 살며 영남동에 밭을 마련해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술자 김동호는 선대가 이후 영남동 서치모르로 내려와 227번지 냇가 동쪽에 살았다고 전했다. 지금 번지로는 영남동 225-6번지다. 족보를 확인해 보니 증조부는 김용교(金龍敎)인데, 향교의 장의를 뜻하는 교장의(敎掌義)였다. 큰아버지 김기반은 교생(敎生)이었던 게 확인됐다.
김동호는 양부모 김기돌(金基乭)에 입적된 사람으로 본래 김창헌(1915생, 제주4‧3 당시 사망)의 아들이었다. 가계는 김동호-부친(양자로 입적) 김기돌(基乭)-조부 김석률-증조부 김용교(龍敎)로 이어진다.
김석률에게는 아들 기반(基班:교생), 기학(基鶴), 기돌(基乭)이 있었다. 1914년 지적원도에는 할아버지 김석율(金石律)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대신 김기반(金基班, 1884년생), 김기학(金基鶴)의 이름이 판관화전에 보인다. 김기반, 기학 형제가 판관화전에 거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기반은 목수일을 했는데, 자녀들이 제주4·3을 전후로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딸 을생(乙生:1910생)은 일본으로 돈 벌러 갔다가 해방 전 그곳에서 사망했다. 두 아들 원희(元禧. 1925생), 원출(元出.1934생)은 제주4‧3 당시 행방불명이 됐다. 원희의 아내도 사망했다.
김기학과 김기학의 아들 원욱(元旭.1918생)도 제주4·3 때 사망했고 원욱이 아내 강계하도 당시 행방불명이 됐다.
김기돌은 영남동에서 돈을 벌어 강정동과 용흥리에 땅 4,500여 평 이상을 사두었다. 제주 4‧3이 일어나기 이전에 용흥리 현재의 집 위치에 집을 지었기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지가가 비싼 용흥리에 땅을 사두었다는 데서, 김기돌은 영남동에서 이미 부자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동호는 원래 김창헌(1915년생)의 아들로 이들은 제주 4‧3 때 용흥리로 이주를 했다. 김창헌의 누나 김정생이 용흥리 고 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게 계기다 됐다. 김창헌은 마을 경비를 서다 무장대에 의해 희생됐다. 이후 김동호는 김기돌의 양자로 입적됐다.
용흥리 주민 고영부(1943년생)는 김창헌이 자신의 외삼촌이고, 어머니 김정생은 영남동 248번지에서 태어났다며 현장까지 확인해줬다. 김창헌 역시도 영남동 248번지에서 생활했다. 1914년 지적원도에는 영남동 248번지가 문필권의 땅이었는데, 이후 김 씨 집안이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김동호는 영남동 227번지 냇가 동쪽에 살았다고 하는데, 그곳은 지금 영남동 225-6번지로 지번이 바뀌었다.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에는 판관 화전 사람들은 숯을 구우며 살았다는 내용이 실렸다. 현재, 판관 화전 터에는 나무와 대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일부 옛 모습이 남아 있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 「남원읍 화전민 이야기」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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