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동 '판관이멩이' 화전민들, 요동치는 운명과 디아스포라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51) 영남동 화전민(1)
영남동은 화전마을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에 리(里)로 인정을 받은 마을이다. 법정사무장항일운동의 재판기록에 영남리라는 마을 이름이 나타나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1928년 생활상태조사』에는 중문면 11개 자연마을 중 하나의 행정단위로 구분됐음이 확인된다. 그만큼 영남동은 마을의 인구가 많았고 행정 운영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던 마을이었다.
영남동의 옛 지명은 ‘서치모르’로 제주4‧3 당시 불에 타 소멸한 마을이다. 제주4‧3 전엔 주변에 판관화전, 코빼기화전을 위성화전으로 두고 있었다. 두 화전 사이에도 한두 채의 집을 가진 화전이 있었다는 게「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 중 제주지형도에 보인다.
이들 두 위성 화전과 그 주변 도순 상동(법정사 항일운동 관련 ‘정구용재심판결문’에 등장)이라 불린 ‘왕하리’나 ‘구머흘’ 화전의 사람들도 1918년을 지나 위 지도에 사라졌다. 이들은 영남동의 중심화전인 ‘서치모르’로 모여든 것으로 추정된다.
■ 판관화전
제5 산록교 서쪽 55m에 있는 시멘트 길을 따라 위쪽으로 약 50m를 오르면 길 서쪽 숲에 있었던 곳에서 판관화전 자리가 나온다. 영남동 195번지 일원으로, 그곳에는 지금도 집터와 울담, 대나무들이 남아 있다. 서호동 출신으로 현재는 동홍동에 사는 허○(1941생)은 그곳이 과거에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 했다.
영남동 화전민의 후손으로 지금은 서귀포시 서홍동에 거주하는 문우현(1940생)은 판관화전지를 ‘판관이멩이’라고 했다. ‘이멩이’는 제주어로 이마를 뜻하는데, 평지가 아닌 언덕 위에 자리했기에 붙어진 이름이다. 이곳 지명유래를 확인해보니 제주 판관이 지나가다 머물렀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제주4‧3 전까지만 해도 당시 영남동 사람들도 ‘판관이멩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지적원도에는 1914년 여섯 가구가 거주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김 씨 집안에 기(基)자 돌림의 네 형제로 추정되는 가구원이 보이고, 문재용 가족, 또 다른 김항률 가족이 거주했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 제주지형도에는 판관화전엔 한 가구도 존재하지 않음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선가 이들 가구는 어디론가 떠나버린 것이다. 1967년 항공사진에는 옛 화전의 집터만 확인할 수 있다.
판관화전을 떠난 것이 확인되는 가족은 김항률 집안으로, 이들은 영남동으로 이주했다. 김항률(金恒律) 가족은 영남동 196번지에 살다가 이후 영남동 267번지 이백훈의 땅을 사서 이사했다. 김항률은 1918년 일어난 ‘법정사항일운동’과 관련해 66인에 포함되어 있다. 법정사항일운동 당시 39세로 재판을 받고 벌금 30원 형을 받았다. 이로 볼 때 1914〜1918년 사이 판관화전에서 남쪽에 있는 영남동으로 이주해 왔음이 보이는 것이다.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p32 문두현의 구술에서도 판관화전에 살았던 사람의 이주과정이 확인된다. 판관화전에 살았던 이들 중에는 문○희의 선친이 도순동 왕하리화전에 살다가 선친이 8살 때 판관화전으로 이주했고 이후 영남동으로 다시 이주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저의 선친이 살아 있으면 96세인데 어점이악 앞에 왕하리 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어점이악 남서쪽 될 겁니다. 하천변인데 거기에 거주를 하다가 저의 선친께서 여덟 살 때 판관이라는 마을로 이주를 하여오고, 영남(마을)로 와서 살다가 20여 년 후에 (다른 사람들도) 영남(마을)로 모아진 것입니다. 지금 산록도로가 뚫리고 있는 위 1km쯤에 ‘코빼기’ 동네가 있었고, 김 씨 집안 세 가구가 후에 영남동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김창헌 씨 집안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로 본다면 도순동 상동에 살던 문 씨 집안 일족도 판관화전으로 이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지적도에 1914년 지적원도에 보이는 문 씨 일족과 같은지는 확인이 안 되고 있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 「남원읍 화전민 이야기」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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