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향기에 추억까지, 먼 길 떠나는 딸과 먹어서 행복했다
[동네 맛집 ㉞] 남원읍 위미리 청포밥상
설 연휴가 길어진 탓에 딸이 닷새 동안이나 집에 다녀갔다. 며칠 같이 지내면서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얘기도 많이 나눴다. 예년보다는 같이 지낸 시간이 긴데도 다시 돌려보내는 건 아쉽다. 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마지막 아쉬움을 날렸다.
찾은 곳은 지난 11월에 문을 연 청포밥상이다. 이 음식점에 대해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귤 수확을 막 시작하라 무렵에 마을 여러 곳에 식당 개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마을에 있는 식당이니 궁금하기도 하고, 귤 수확 철이라 음식 준비가 번거롭기도 해서 식당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현수막에 주소가 찍혀 있어서 내비게이션이 알리는 대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좌회전, 우회전, 직진을 반복한 끝에 찾은 곳이 이런, 바로 북타임 근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매일 다니던 근처에 음식점이 새로 들어선 걸 몰랐다. 게다가 그 집은 어릴 때 자주 놀러갔던 이웃집이 아니던가?
청포밥상 주인장은 원래 이 집의 큰 딸이다. 결혼하고 서귀포시내에서 사는데, 친정집 한 칸을 빌려서 식당으로 쓴다. 친정 부모님이 여전히 그 집에 산다. 바쁠 땐 친정어머니가 일을 돕기도 한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 입간판에 그날 만드는 메뉴를 적어 알린다. 1월 31일엔 소불고기덮밥, 매운맛갈비찜, 몸국, 육개장, 꼬막비빔박, 동태탕이 적혔다. 개업할 당시에는 옥돔국, 순대국밥, 두루치기가 있었든데, 이 메뉴는 지금 사라졌고, 꼬막비빔박이 없었는데 지금은 주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주인장은 “국물요류 일색이라 점심에 가볍게 먹을 음식으로 꼬막비빔박을 내놔봤는데, 찾는 사람이 많아져 지금은 시그니쳐 음식이 됐다.”라며, “지금은 몸국과 함께 가장 많이 팔린다.”리고 말했다.
세 명이라 각각 다른 음식을 주문했다. 난 원래 이집 몸국을 가장 좋아하지만, 명절에 기름진 음식을 먹었던 탓에 기름기 없는 꼬막비빕밥을 선택했다. 아내는 늘 하던대로 몸국, 도시 입맛에 익숙한 딸은 불고기덮밥을 택했다.
주문을 하면 반찬이 먼저 깔린다. 깍두기, 감자볶음, 애호박볶음, 콩나물무침, 마늘쫑장아찌 등인데, 모두 주변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것들이다. 모든 반찬이 신선하고 맛이 좋은데, 특히 깍두기가 최고다. 제주도 겨울은 귤과 함께 무가 나는 계절인데 올해 무 맛이 좋아 깍두기가 일품이다.
꼬막비빔밥엔 싱싱한 꼬막과 함께 깻잎과 상추, 오이와 함께 김을 넣는다. 거기에 양념장을 넣어 비벼서 먹는 것인데, 입에 넣는 순간 바다향이 몸안으로 퍼진다. 간단해 보여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주인장은 “이걸 만들기 위해 아침마다 꼬막을 구입해 손질을 한다. 손님들이 좋아해서 이젠 우리집 주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몸국은 말을 안 해도 최고다. ‘베지근’한 고기국물에 모자반을 푹 쌂아 배도 채워지고 마음도 채워지는 맛이다. 모자반을 삶은 시간이 짧으면 맛이 거칠어지고 길면 물렁해진다. 메밀을 많이 넣으면 너무 걸쭉해지고 적으면 맑은탕이 돼버린다. 모든 걸 적당히 잘 조절해 좋은 식감과 맛을 낸다. 명절 연휴가 아니었다면 몸국을 먹었을 텐데.
불고기덥밥은 쇠고기를 양념해서 볶아서 고명으로 오린 것이다. 양파와 대파를 많이 넣어서 건강한 느낌이 든다. 그 위에 참깨를 가득 뿌려서 고소한 향까지 풍긴다. 딸이 먹고는 “맛이 좋고 서울에 비해 무척 저렴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이걸 먹으려면 최소로 1만5000원은 줘야 한다고.
오래전 부모들은 자식이 먼 길을 떠날 때, 밥을 많이 먹고 가라고 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음식이 귀하던 시절이라, 그랬을 텐데. 음식이 흔해지고 교통도 편리해서 서울까지 금방 가는 세대라지만, 딸이 맛있게 먹고 길 떠나는 걸 보는 건 뿌듯한 일이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청포밥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151번길 15
몸북·꼬막비빔밥·불고기덮밥·육개장 1만원
아직은 점심에만 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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