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정신없는 상태에서도 전시로 아우성치는 이유

[전시]‘Nevertheless’ 27일까지 서귀포삼다종합사회복지관 삼다갤러리에서

출산과 육아로 지친 여성들이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로 나락으로 빠진 자아를 간신히 붙들고 있다. 이중에는 네 명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있고, 한 달 전에 출산한 이도 있다. 이들은 잠이 부족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전시회를 열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출산은 산모에게 상당한 고통을 요구한다. 출산은 제 몸을 가르고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고된 과정이다. 그 과정에 산모는 가장 강렬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데, 연구자들은 그 고통이 뼈가 부서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 육아에 지친 여성들이 전시를 마련했다.(사진=활활살롱)

출산 이후, 육아 과정도 전쟁이다. 아이를 돌보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고, 하루 종일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집안 정리를 하다보면, 엄마의 에너지는 고갈된다.

여성들은 출산과 양육을 선택한 대가로 제 삶의 의미를 포기해야 하고, 적지 않은 여성들이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런 힘든 여정 속에서도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활동으로 자아를 붙들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육아 여성들의 창작 모임 ‘활활살롱’, 회원들이 8월 7일부터 27일까지 서귀포삼다종합사회복지관 2층 삼다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 제목이 ‘Nevertheless’, 번역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 전시장 내부(사진=장태욱)

삼다갤러리에 들어서면 전시장 가운데 길게 이어진 테이블 위에 회원 각자의 소품이 나열된 게 보인다. 각자의 피할 수 없는 일상을 상징하는 물건들이다. 김짓큐 회원은 최근에 회사로 복직했기에, 키보드와 결재판, 문구류 등으로 자신의 사무실 책상을 표현했다. 회사 사무실이 글을 쓰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한다. 소민짱 회원은 4명 아이를 키우는 육아 여성인 만큼, 서랍마다 네 아이의 이름이 적한 서랍장이 있고, 그 안에는 아이들을 위해 쓴 메모장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런 소품들 가운데는 노트 두 권, 흙노트와 가죽노트가 있다. 흙노트는 창작을 위해 필사나 메모, 낙서를 하는 용도이고, 가죽노트는 오롯이 자신의 감정이나 일상을 기록하는 용도다. 노트 두 권은 회원들이 지푸라기처럼 붙들고 싶은 두 가지 가치, 창작과 자아를 상징한다.


▲ 김짓큐 회원의 전시(사진=장태욱)

▲ 소민짱 회원의 전시(사진=장태욱)

김소어 회원의 흙노트를 열어보니, 능소화 실제 꽃이 붙어 있고, 꽃에 대한 단상이 적혀 있다. 가죽노트에는 커피 없이 행동할 수 없는 자신의 일상에 대한 내용이 쓰였다. 무기력해서 영양제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를 적은 대목도 있다.

전시장 벽면에는 그림 여러 작품이 걸렸다. 그동안 그렸던 것들인데, 그간의 활동을 갈무리하는 의미로 전시했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한 그림도 있고, 육아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 그린 것도 있다.


▲ 김소어 회원의 노트(사진=장태욱)

▲ 하수현 회원의 그림(사진=장태욱)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한 활활살롱 박초연 대표는 “이번 전시가 어떤 활동의 결과로서 작품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활동 과정을 공유하는 전시”라면서 “세상이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리고 “회원들은 아이를 적게는 두 명, 많게는 네 명을 돌보는 다자녀  엄마다. 하수현 회원은 출산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모두 육아로 잠을 못 자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전시를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박초연 대표는 "이 전시는 다가오는 11월 29일 제주시 스테이위드커피에서 진행될 연말 전시를 위한 과정 전시"라면서 "연말 전시에 많이 방문해주시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회원들을 지금 모두 육아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일상을 견뎌내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열고 세상에 아우성을 치고 있다. 전시 제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인 이유다.

전시에 참여한 사람들
김소어, 김짓큐, 박용웅, 박초연, 소민짱, 이지나, 하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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