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와 양극화, 탈 진실의 시대, 사람 억누르는 둑이 무너진다”

[북 리뷰] 프란치스코 교황의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21세기북스, 2020)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88세의 일기로 선종했다고 바티칸이 밝혔다. 영국 언론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도의 수장인 교황은 21일, 산타 마르타의 자택에서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교황의 시신은 23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됐는데, 1만 명이 넘는 추모객이 몰리면서 대성당은 자정에서 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


▲ 책의 표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13일,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 콘클라베를 통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즉위한 후 9일 만에 뒤 로마의 한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들의 발을 씻겼고, 중동·아프리카의 난민들이 죽음에 내몰리는 상황에 대해서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했다. 2014년, 한국을 방해서 남긴 행적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는 중립적일 수 없다”는 말로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했는데, 울림이 커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일이 회자된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선포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시 한 번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두려워 떠는 인류를 위해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도하던 뒷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이후에도 고통의 시간이 계속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이라는 책으로 인류에게 희망을 전했다.

책은 라틴아메리카가 변화에 대응할 때 흔히 사용하는 직시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법으로 구성됐다. 거북하더라도 사회 주변부가 고통 받는 현실을 직시하고, 긍정적인 것과 파괴적인 것,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진단하며, 변화를 위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참신한 생각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 직시할 시간 : 박해, 탈 진실, 환경파괴

현대 지구의 너무나 많은 곳에서 극단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교황은 세상의 실상을 보려 한다면 주변부로 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주변부엔 죄와 고통이 넘쳐나는 반면, 새로운 가능성이 가득한 곳이라고 한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 족은 지상에서 가장 심한 박해를 받지만,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이들을 위해 하루 한 끼 식사를 포기했다는 대목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며 사례로 전했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빈민촌이나 난민촌 주민들은 씻을 물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됐다. 이에 대해 교황은 이 비극의 원인은 코로나19만이 아니라고 진단하며, 사회 소수 지배층만이 아니라 전체가 혜택을 받는 공동의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언론에 대해 따끔한 충고도 남겼다. 언론의 역할은 시민들이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듣고 균형있게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최고의 기자들은 독자들을 세계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여주며 관심을 갖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탈 진실 문화에 사로잡혀 거짓 정보와 명예훼손을 남발하는 언론도 적지 않다며, 이런 언론은 사회 조직망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황은 지구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선물이며, 공통으로 소유한 집이라고 했다.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는 문제를 언급하며, 인간의 운명이 지구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생태인식에 대해서는 인류의 운명에서 무엇이 위기에 처했는지 깨닫고 자각하는 것이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고 역설했다. 그 연장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워야 할 미래는 생태적 위기만 아니라 문화와 윤리의 다락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통합생태론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선택할 시간 : 멈춤과 변화, 토론과 조화, 인간개발과 공동선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모든 것을 멈추고 기존의 관례와 우선순위에 변화를 줄 것을 요구한다. 교황은 이에 대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성령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고 탐색하라고 제안한다.

교황은 교인을 향해서는 특히, 외떨어진 양심을 경계하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외떨어진 양심은 교리를 이데올로기로 삼고 의심과 억측에 사로잡혀 음모론에 빠지게 된다고 우려하며,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을 자신 안으로 초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교황님과 주교단이 함께 참석하여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에 관한 중요한 원칙을 세워온 회의를 시노드라고 하는데, 교황은 시노드에 앞서 교회가 열띠게 토론하고 의견을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교황은 공동합의성(synodality)이라는 오래된 관습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교황으로서 관심사라고 밝혔다. 공동합의성은 억지로 합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차이를 인종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인데, 최대교회에 그런 진정한 보편성, 다채로운 얼굴의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했다.

■행동할 시간 :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

교황은 우리가 재앙에 한동안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수 있지만, 그 재앙 덕분에 존엄한 존재였다는 기억을 회복하고 역량과 희망을 되살릴 수 있다고 전했다. 위기 가운데 전 인류를 위한 형제애와 연대성을 윤리를 회복하고 신뢰와 소속감을 통한 유대를 되살려야 한다며, 다른 사람을 섬길 때에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방임적 시장주의도 경계했다. 자유방임적 시장주의는 노동을 존엄하게 여기지 않고 생산의 도구로 치부하고, 이익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는 성장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는데, 시장의 힘만으로는 배척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황폐화되는 자연계를 되살릴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포퓰리즘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포퓰리즘은 두려움을 자극하고 공포심을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인민의 고통을 악용할 뿐이지 고통의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포퓰리즘적 지도자는 민족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옹호하려고 타자를 부정하는 잔혹한 언어를 쏟아내는데 이는 권력을 장악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중심에는 곤경에 빠진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다며, 증오와 두려움은 복음과는 전혀 화합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교황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면 사회의 주변에 가서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해결책도 무럭무럭 자란다.”는 말을 인용하며, 거기서 희망을 찾고 주변에 숨겨진 지혜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말미에 가난한 사람의 통합과 환경에 대한 세심한 관리를 사회의 중심 과제로 삼을 때 일자리도 만들고 환경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고 했다. 악명 높은 낙수효과 이론보다 인간개발이라는 공동선을 목표로 삼고 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따른 편협한 개인주의를 초월하면서도 포퓰리즘의 덫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교황은 책의 서문에서 코로나19 위기로 고통이 범람했지만, 그 위기에 대응하는 창의력도 범람했다고 진단했다. 사람을 억누르던 전통적인 경계의 둑이 무너지고 자비의 물결이 넘쳐흐르는 게 보인다며, 위기를 겪고 나면 우리가 더 선해질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선 순례자에 대해 얘기했다. 순례자는 중심에서 벗어남으로써 초월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간다고 했다. 순례의 시간’이라고 선언했다. 앞을 향해서 걷지만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야 할 시간.

그 순례자가 혼란한 세상, 파괴에 고통받는 빈자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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