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아버지, 치열했지만 서툴렀던 인생을 향한 찬사

[북 리뷰]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

제목부터 왠지 매우 친근하다. 맞다. 책은 2022년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초록색 바탕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마을의 집들이 알록달록 정겹게 그려진 표지의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를 치루는 3일 동안을 다룬다. 작가의 분신이라 짐작되는 주인공 아리는 장례식장에서 문상객들을 맞으며 빨치산이었던 부모님의 삶을 조망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p.7.『아버지의 해방일지』)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 아마 어제였을지도.”라는 뫼르소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카뮈의 『이방인』만큼이나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첫 문장은 건조하다. 하지만 소설의 정조는 무겁지 않다. 장례식장의 사흘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문상객들을 접견하는 일 뿐 아니라, 접대할 음식을 고르고, 장지를 정하는 등 수 많은 일들을 결정해야 한다. 외동딸인 아리는 생각지 못했던 아버지 지인들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를 발견한다.

정지아 작가는 25세이던 1990년, 『빨치산의 딸』3권을 실천문학사에서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47년부터 1952년까지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부모님의 삶을 다룬 이 책은 공안당국에 의해 국가보안법에 따른 이적표현물로 분류되었고, 당시 출판사 대표는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작가도 몇 년 간의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판매금지 되었던 『빨치산의 딸』은 2005년 필맥출판사에서 1,2권으로 복간되었다. 작가는 『빨치산의 딸』의 프롤로그에서 “내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적 형식을 띤 역사서”(p.5)로 이 책을 설명한다. “더 나은 어떤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옛 사람들의 기록“(p.6),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의 빛나는 한 순간의 기록”(pp.6-7)이라 말한다. 철도 노동자였다가 빨치산으로 입산하였으나 지하조직의 재건을 위해 하산하고 위장 자수했던 작가 아버지의 투쟁이 1부를 이루고 있고, 먼저 입산한 첫 번째 남편을 따라 빨치산이 되었다 체포된 어머니의 투쟁이 2부를 구성한다.

“...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었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p.353. 『빨치산의 딸 1』)

20대의 정지아 작가가 『빨치산의 딸』에서 소설적 형식을 통해 빨치산 전사였던 부모님의 삶을 기록하며 현대사의 가려진 부분들을 재건하려 했다면, 작가가 50대에 쓴『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 아리 부모님의 모습은, 허당에 가까운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동댁의 함석집에서 하동댁의 엉덩이를 두드리다 어린 딸에 의해 끌려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작가의 이름 ‘지아’가 부모님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따왔다고 알려진 것처럼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이름은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과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에서 따 온 아리’(p.29.『아버지의 해방일지』)이다. 각자의 첫 번째 배우자와 이별/사별한 아리의 부모님은 재혼하여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의 외진 마을인 반내골에 정착하였고, 아리를 낳고 농사를 짓는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기술하면서도 소설의 곳곳에는 유머 코드가 보인다. 미스코리아 경연대회를 TV로 보던 어머니가 “아이고 우리 아리도 저런데 나가보면 쓰것다.”(p.29) 라고 하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쯧! 자네는 어린애에게 사기를 치고 그러나!”(p.30) 라고 냉담히 받아친다. “내 외모가 그럼 어느 정도인데요?” 라는 아리의 물음에 “쯧! 하의 상은 되것다.”(p.31)라고 아버지는 냉정하게 평가한다. 아버지의 이러한 언급으로 인해 본인의 외모는 9등급 중의 7등급이란 말인가? 라고 어린 아리는 생각한다. 40이 넘어서 본 첫 자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 아리에게 요즘의 딸 바보 아빠들처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이 아닌 너의 외모는 ‘하의 상’이라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아버지라니...

정치적 성향이 완전히 다른 친구에서부터 아버지와 맞담배를 피우던 노랑머리의 여자아이처럼, 주인공 아리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많은 지인들이 문상객으로 방문하여 아버지를 기린다.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p.138. 『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의 딸』을 20대에 썼던 작가는 50대가 되어 자전적 요소가 다분한 소설인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썼다. 장례식은 슬프지 만은 않다.

“뿌레삐리렛다니까.”(p.258)

아버지가 빨치산으로 투쟁하던 지리산 자락에 아버지의 유골을 묻는 것이 쉽지 않게 되자, 아리는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 아버지의 유골을 한 줌씩 산골 한다. 아버지와 아리가 다녔던 구례의 중앙교, 섬진강, 반내골 가는 길, 오거리 슈퍼 앞, 삼오시계방, 아버지가 하동댁의 엉덩이를 두드리던 함바집이 있던 자리...

“... 죽음으로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p.231. )

담담하게, 혹은 해학적으로 아버지를 기리면서도 “사무치게, 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p.231.『아버지의 해방일지』)라고 아리는 말한다. 맛깔난 남도 사투리를 정겹게 구사하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설의 형식으로 기리는 아버지에 대한 최고의 오마주(hommage)다.

주당들에게는 정지아의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마이디어 북스. 2023)를 권한다. 술을 매개로 만난 다정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효숙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몇 년 전 은퇴했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집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노랑 고양이 달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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