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사회에서 그들의 사랑이 유난히 ‘격정’적인 까닭은?
[북 리뷰] 찬쉐 著·강영희 譯 『격정 세계』(은행나무, 2023)
『격정 세계』를 처음 붙잡고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호감보다는 반감일지도 모른다. 전래 동화 같은 문학 찬양론을 680페이지나 썼고, 등장인물들은 사랑하고 섹스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사랑의 작대기를 이어주느라 엄청난 분량을 또 소비했다. 마치 무협소설처럼 단순한 구성과 등장인물들은 사랑의 태엽 장치가 조준하는 곳을 향해 곧게 나아간다. 이번 글은 책을 읽고 떠오른 질문에 답변을 하는 Q&A 방식으로 서술했다.

작가 찬쉐는 왜 북클럽이 사회와 국가, 인류를 구원할 희망으로 노래했을까?
비둘기 북클럽은 마법 도시와 같다. 이곳에 발을 걸친 사람들을 마법처럼 이어주기 때문이다. 『격정 세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낱말 중 하나가 ‘결계(結界)’라는 불교 용어이자 무협지 용어인데, 격정 세계야말로 작가가 만든 가장 중요한 결계이다. 헤이스, 페이, 리하이는 북클럽을 만들면서 하나의 중요한 전통을 만들고 실천한다. 비둘기 북클럽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비둘기 북클럽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북클럽 멤버들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리하이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헤이스는 차오쯔와 여행 중이었는데 여행을 깨고 리하이를 정성스레 간호한다. 이것 때문에 헤이스는 차오쯔와 결별하는데, 그건 비둘기 북클럽 멤버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원칙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섹스를 할까?
작가 찬쉐의 사랑론은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으로 완성된다. 사랑의 다양한 유형과 비교한다면 『격정 세계』의 인물들은 다소 고전적인 사랑의 세계관 안에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지만, 비둘기 북클럽에서 성장하고 결계를 뚫고 나온 새들을 닮은 주인공들은 육체적인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도록 설계되었다.
육체적 사랑은 인물들의 성격을 드러내 준다. 가장 격정적인 섹스를 하는 한마는 내우외환이라는 두 가지 시련을 겪는다. 외적으로는 페이와 결혼했지만 페이의 전 애인이 임신하면서 파혼한 상처가 있다. 내적으로는 책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결국 창작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인지도가 없는 작가에게 어떤 독자가 눈길을 줄 것인가?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창작에 몰두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마를 사랑하는 샤오웨는 출판 유통업을 한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 한마의 작품이 새로운 시대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작품 확산 운동을 벌인다. 이웃 도시 진청의 평론가들에게 한마의 작품을 적극 알리고 인지도를 쌓아가는 한편, 새로운 독서모임을 조직해 한마의 작품을 읽히도록 노력한다. 비둘기 북클럽의 정신적 지주인 이 아저씨는 평론을 통해 한마의 작품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 찬쉐의 자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한마는 샤오웨와의 격렬하고 일상적인 섹스를 통해서 자신이 혁명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과시한다. 그야말로 격정의 세계에 사는 혁명적인 섹스를 하는 인물이다.
찬쉐가 진단하는 현재의 문화는 폐쇄적이고 때로는 퇴폐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 편집자의 몸을 쓰다듬었다가 대국민 비난받은 나이 든 시인 사례를 본다면 퇴폐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문학 시장과 주도하는 출판사는 중소기업 수준이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서 배출되는 작가들을 합쳐도 한 줌이 되지 않는다. 일반 독자들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주면서 작가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지금의 시장 규모와는 차원이 다른 시장이 열릴 것이다. 작가는 ‘쇼미더머니’의 문학 버전을 상상하고 있을까?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연예계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런 시도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찬쉐는 평단으로 대표되는 폐쇄적이고 소소한 결계를 일반 독자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넓히고자 한다. 즉, 책을 사랑하는 일반 독자가 내면의 에너지를 폭발시켜 창작하면 그 작품이 독자들에게 환영받으면서 새로운 문학 생태계가 구축되는 큰 그림 말이다.
작가는 왜 노동자, 대도시, 쇼핑몰, 자본주의를 『격정 세계』에 담았을까?
『격정 세계』의 사랑의 문을 활짝 여는 주인공 샤오쌍은 대형 쇼핑몰의 매대 계산원이다. 작가는 샤오쌍의 성장 과정을 매우 섬세하고 천천히 서술했다. 헤이스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비둘기 북클럽과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묘사하면서 북클럽과 북클럽 멤버의 관계를 설명한다. 문학을 사랑하면서 샤오쌍의 인생은 어떤 방향을 향해서 약진하고, 가족들도 샤오쌍에 힘입어 함께 전진한다.
샤오쌍과 그의 동료, 가족, 친구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이다. 이 중에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평론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작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작가 찬쉐가 자신의 독자를 일반 소시민과 노동자로 설정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격정 세계』가 전래 동화처럼 쉽게 쓰여진 것도 어쩌면 노동자 독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한때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낱말이 유행했다. 미셸 푸코가 신자유주의를 분석하면서 예견했다고 한다. 푸코가 볼 때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는 신체뿐 아니라 모든 행위를 기업가로부터 규정당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본주의 사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표준적인 인간형처럼 받아들여진다.
『격정 세계』에서 흥미를 주는 인물은 차오쯔이다. 차오쯔는 원래 헤이스와 연인이었지만 헤이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속물주의 바이밍의 물량공세에 넘어가 결혼한다. 헤이스로부터 차오쯔를 쟁취한 인물인 바이밍이야말로 호모 에코노미쿠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밍과 헤이스는 차오쯔를 가운데 놓고 줄다리기한다. 헤이스는 겉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고 화려함은 바이밍에 비교할 바가 못 되기 때문에 차오쯔는 바이밍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헤이스의 진가는 바이밍이 승리한 순간부터 위력을 발휘한다. 바이밍은 차오쯔를 지키기 위해서 계속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바이밍이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차오쯔를 마비시키는 것뿐이다. 차오쯔는 성장하고 있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성찰하는 인물로 자란 이상 바이밍의 물량 공세와 속물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욕망이 만들어낸 결계에 영원히 갇혀 있을 수 없다.
『격정 세계』의 작가는 질문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냐고?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시키고 일시적 쾌락을 줄 수는 있지만, 인간은 일시적 쾌락으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차오쯔는 문학의 세계로 들어온 것을 보면서 삶을 바꾸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문학에 대한 세계관을 바꾼 보통 사람이다.
“어머, 당신은 책을 듣는군요?”라는 차오쯔의 말은 책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만 할 수 있다. 바깥세상의 전혀 새로운 에너지, 건강한 에너지가 책의 세계 속으로 와서 폭발하거나 꽃을 피운다. 처음에는 오프너(헤이스, 리하이, 페이)들의 지도를 받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끌어간다. 찬쉐의 문학 찬양론은 ‘문학을 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찬양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오승주 ([email protected])
제주 성산포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어촌 소년처럼 10년간 사춘기, ‘놈팽이’로 살다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특히 동양철학을 좋아해 서당에 다녔고 공자를 지적으로 스토킹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왔다. 제주4.3과 제주신화에 관심이 많은 소설가 지망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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