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찾던 물은 사라지고, 상처와 선물 같은 풍광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22) 물오름(수악)
과거에 소중했던 샘물, 점차 찾는 이 없어지고
오름 이름만 보아도 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최근까지 물을 이용하였다는 흔적이 남아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물이 귀한 시절, 제주에서의 물은 생명수와 같은 귀한 것이었다. 수도관이 연결되어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게 되면서 귀하게 쓰던 물은 점점 사라지고, 소중하게 쓰였던 물의 흔적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양봉하시는 분들이 물을 이용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물을 끌어 올려 썼던 양수기와 양봉 통들이 겨울을 난 사소한 흔적들과 함께 남아 있었다. 기후변화로 꿀벌들이 사라져 양봉하시는 분들의 숫자도, 물의 양도 줄어 점점 이용하지 않게 되는 이곳, 흔적조차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는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한다. 이름만 수악이지 ‘물 어신 오름을 지칭하는 지명’이라고 설명한 책도 있지만, 좀 더 신중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서귀포 앞바다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상의 장관
한라산 둘레길은 9개의 구간으로 해발 600~800미터의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다. 일제 강점기 병참로(하치마키도로라고 불렸음)와 임도 등을 연결하는 80km의 환상숲길 중 하나이다. 한라산국립공원으로 집중되는 탐방객을 분산시키고 역사, 생태, 산림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학습장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조성 운영한다. 5구간인 수악둘레길은 중간 5.16도로와 만나면서 수악, 이승악 그 주변을 흐르는 신례천을 따라 이어진다. 신례천생태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4·3유적지 중 처음으로 국가지정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4·3수악주둔소’와 일제 강점기 공유지와 사유지를 구분하는 ‘구분담’, ‘숯가마터’ 등 아픈 기억들의 역사적 장소를 만날 수 있다.

3월인데도 숲속은 아직 겨울을 벗지 못했다. 1970년대 조림해 놓은 삼나무 사이사이로 낙엽활엽수들의 잎이 아직도 걷는 이들에게 밟히고 앙상한 가지가 상록수 틈 속에서 빛을 받아준다. 미세먼지가 많은 오후인데도 상록활엽수들의 초록초록 달린 잎들 덕분에 기분 좋은 걸음을 만들어 준다. 물오름 정상가는 길은 정원을 만들어 놓은 듯 키 작은 나무와 동백나무, 소나무, 사스레피 나무들이 낙엽활엽수들과 어우러져 숲터널을 만들어 주고 있다. 살짝 오르막길은 금세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은 초지로 되어 있고 중앙엔 넓은 서귀포 풍광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한라산이 남쪽으로는 제지기오름, 지귀도, 섶섬, 칡오름, 영천오름, 문섬, 범섬, 삼매봉, 미악산, 고근산 등 오름과 서귀포 앞바다의 섬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울창한 오름의 조림지에 ‘도시숲’ 조성이라니
산림청은 기후변화로 오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민 안전 탄소중립 실현과 숲을 통한 저성장 지역소멸문제 해결 등 5대 전략을 담은 ‘모두가 누리는 숲’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나무를 심어 탄소흡수원을 확대하고 숲을 지역 활성화를 위한 핵심 자산으로 육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도시숲을 조성하는 듯하다. 오르는 길에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도시숲’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어색하다. 서부지방산림청은 수악오름 산록부의 편백숲에 제주 삼나무를 활용한 데크길을 만들고 주변에 향기원, 빛의 화원, 새소리정원 등을 조성하여 오감으로 숲을 체험할 수 있는 도시숲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정상 오르는 길에 보이는 안내문, 2024년도 산불진화임도 설치사업으로 공사 중이라 통행에 불편을 주어 죄송하다는 현수막이다. 통제기간이 2024년 12월 27일까지인데 아직까지 붙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인간이 편리 하자고 감아놓은 밧줄에 감겨
물오름은 자체높이가 149미터이다. 오름 중 결코 낮은 오름은 아니다. 쉽게 정상에 오르기에 아마 높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정상전망대에서 동쪽으로 조성되어 있는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 높이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화산탄과 특이한 바위 모습들, 봄을 맞이하는 새싹들이 함께 함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자연림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겨울딸기의 군락도 만난다. 예전엔 귀했다는 말이 이제는 기후변화 때문인지 오름마다 많이 만날 수 있는 걸 보면 예전보다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현상으로 보인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 가파른 길을 의지하라고 나무에 밧줄을 둘렀다. 묶어 놓은 밧줄이 나무피부 속을 깊이 파고 들고 있었다. 우리가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것이 평생 이곳을 터전으로 자리 잡은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살짝 불편해지는 맘과 미안함이 드는 발걸음은 순간 무거워진다.
물오름(수악)
서귀포시 하례리 산10번지
표고 474.3미터 자체높이 149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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